항목 ID | GC028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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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秊洙 |
영어음역 | Gim Yeonsu |
이칭/별칭 | 판흥(判興),수당(秀堂)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기업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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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
성별 | 남 |
생년 | 1896년 10월 1일 |
몰년 | 1979년 |
본관 | 울산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기업가.
[개설]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아명은 판흥(判興), 호는 수당(秀堂)이다. 1896년 10월 1일 전라북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경중(金暻中)이며 어머니는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김성수(金性洙)가 형인데, 큰아버지 김기중(金祺中)의 양자로 들어갔다.
[활동사항]
김연수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고향에서 영신학교를 마쳤다. 그 후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에 있는 아사부중학교[麻布中學校]와 교토제삼고등학교[京都第三高等學校],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한 뒤 형 김성수가 경영하던 경성직뉴주식회사와 경성방직의 간부로 근무했다. 1924년 삼양사(三養社)를 설립하고 장성농장(長城農場)을 개설하였다.
1925년경부터 학교 경영 및 언론사 운영 등으로 사회 활동에 나선 김성수를 대신하여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오랫동안 친일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경성방직 사장이란 직함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1939년 경성부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 194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 직을 받았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거액의 국방헌금을 기부하는 등 일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경성방직을 기반으로 군수 산업에 뛰어들었고, 1944년 전쟁 지원을 위한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전쟁 기간 중 국민총력조선연맹·조선임전보국단·조선국민의용대 등 친일 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대학생들을 상대로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러 다녔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풀려났고, 이후 196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경제협의회 회장을 맡고 여러 차례 훈장을 받는 등 재계의 원로로 활동했다. 김연수는 모두 7남 6녀를 두었는데, 이 중 둘째 아들이 전 국무총리를 지낸 김상협이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약칭 민족정기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속하였고,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71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고, 197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