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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리 용기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522
한자 龍基里龍基堂山祭
영어음역 Yonggi-ri Yonggi Dangsanje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Yonggi Village, Yonggi-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 용기마을지도보기
집필자 송화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 신앙|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3일 오후
의례장소 당산
신당/신체 당산나무[팽나무]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 용기마을에서 정월 초사흗날에 지내는 풍어제 성격의 마을 제사.

[개설]

용기리 용기마을 당산제는 고창군 해안 지역 어촌인 용기마을에서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용기마을이 속해 있는 용기리는 산이 용의 형국이라 하여 용기라 하였는데, 원래는 무장군 심원면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해 수다동을 병합하여 용기리라 하여 고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기리는 해안 지역의 풍어제와 마을 안녕의 당산제를 지내오는 관행이 강력하게 전승되는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연원 및 변천]

마을 사람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용기마을을 고막(古幕)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막[고막이]은 마을 서쪽으로 바닷가 보다 가까운 곳을 지칭하는데, 이곳을 ‘상고막’과 ‘하고막’으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이 고막마을이 용기마을의 이전 터로, 현 위치인 용기마을로 옮겨온 지는 몇 백 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하고막마을에는 ‘황새암[황샘]’이라는 샘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그 물을 먹고 살아서 모두가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지 못하고 현 용기마을로 터를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대략 1972년경에 마을의 당산나무를 베어 버리면서 당산제도 모시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당산나무를 베어 버린 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 즉 해난 사고와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특히 1986년에 해난 사고로 마을 사람들이 많이 죽자 1987년에 나무를 그 자리에 다시 심어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 당산제는 젊은 층이 중심이 되어 초사흗날 낮에 간단하게 모신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기마을의 당산나무는 바다에서 바라보면 마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당산나무에서 바라보이는 산이 ‘용기재’이다. 예전에는 용기재가 용기에서 수다마을로 연결되었다. 이는 선운사를 거쳐 고창까지 연결되는 재로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복하는 길목이었다. 지금은 마을 가운데로 국도가 놓여 용기재로 왕래는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당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해당하였다. 당산나무는 한 그루의 팽나무로 마을 뒤편 논 가운데에 서 있다.

[절차]

용기마을의 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 모신다. 예전에는 초사흗날 밤 10시경에 제를 모셨으나 지금은 초사흗날 오후에 모시고 있다. 제를 모시기에 앞서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아이를 낳는 등의 궂은 일이 생기면 이월 초하루로 옮기게 된다. 따라서 산달이 임박한 여자는 이웃 마을인 수다마을이나 인근 친척집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당산제를 준비하기 위해 ‘화주’를 한 명 선정하는데, 섣달 스무 하루날 쯤 마을 회의를 통해 연말 결산을 하면서 결정한다. 화주는 깨끗하고 그해 생기 복덕한 사람으로 정한다. 정해진 화주는 섣달그믐부터 부부 합방을 금하고 대변을 보면 목욕재계하며 소변을 보면 손을 씻는 등 항상 깨끗하게 하면서 궂은 일이 없어야 한다.

제사 비용은 가족 수대로 ‘명하전’을 걷는데, 마을에서 책임자를 정해 섣달그믐 안에 걷는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기금에서 준비하며, 집집마다 돌면서 걷지는 않는다. 제물은 그믐 안에 장을 보아 미리 준비하는데, 화주가 보관하며 함부로 손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룬다. 제물은 삼실과, 나물, 돼지머리, 명태 등이며, 제주로 막걸리를 준비한다. 예전에는 화주 혼자서 모든 제물을 준비하였지만, 지금은 화주 부인이 음식을 만든다. 그래서 화주를 뽑을 때 화주 부인이 부정이 없고 깨끗한가를 보며, 화주와 함께 제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예전에는 초사흗날 아침에 마을 양쪽 입구, 우물가, 당산나무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다. 그리고 당산제가 끝나면 바로 걷어 깨끗한 곳에서 태워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제의 시간이 되면 먼저 마을 사람들이 굿을 친다. 굿을 치는 동안 화주와 화주 부인은 먼저 당산나무에 가서 제물을 진설한다. 이어서 굿치는 사람과 깨끗한 마을 사람들이 당산나무에 도착한다.

제물이 모두 진설되면 화주가 제일 먼저 재배하고 소지를 올린다. 이어서 마을 사람 가운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재배하고 소지를 올린다. 예전부터 축문은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부녀자들은 제에 참여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부녀자들도 제에 참여한다. 또한 예전에는 정월 초사흗날 샘제와 철륭제를 모셨으나 당산나무를 베어 버린 뒤로는 없어졌다. 따라서 용기마을의 당산제는 끊겼다가 15년이 지난 후 다시 모심에 따라 다소 생략되고 느슨해졌다.

[축문]

용기리 용기마을 당산제는 전통적인 농촌의 마을 굿 형태의 동제여서 축문 사용이 없었다.

[부대행사]

용기리도 예전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하였다. 줄다리기는 보름날 아침부터 집집마다 짚을 걷어 대략 9겹의 줄을 만든 다음 저녁 때 줄다리기를 하는데, 마을 중앙을 기준으로 위 아래로 편을 나누었다. 주민 참여가 많을 때는 300명이 넘었으며, 굿치는 사람도 꽤 많았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가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 그 후 당산나무에 줄을 감고 당산나무 앞에서 굿을 친다. 그 사이 부녀자들은 오곡밥을 뿌리고 다닌다. 줄다리기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에 자취를 감추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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