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666
한자 金宗瑞遺墟址
영어의미역 Remain of Gim Jongse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138-2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0월 31일연표보기 - 김종서유허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종서유허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유허지
지정면적 5,353㎡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138-2 지도보기
소유자 공주시
관리자 공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김종서의 생가지.

[개설]

김종서유허지가 있는 의당면 월곡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자 명장이며 절의인으로 이름 높은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의 생가 터와 김종서를 배향하던 사우 요당서사(蓼塘書社)가 있던 마을이다. 김종서천태산 아래 하월곡리에서 태어났다. 죽은 후 이곳 천태산 아래에 묻었다가 장기면 대교리 밤실로 이장하였다. 이 마을의 비계실김종서의 저택과 초당이 있어 오래도록 정승골이라 불렸다.

[변천]

김종서의 조부인 김태영(金台泳) 때에 공주에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추측된다. 전언에 의하면, 조부인 김태영이 순천과 한양을 왕래하기 어려워 중간 정도인 공주 요당에 저택을 마련하였다고 하며, 김종서의 묘지문이나 실록의 기사를 통해서도 김종서의 선대가 공주에 살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김종서의 부인이 전의이씨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의이씨는 공주와 전의 일대에 세거하였던 토성으로 사회경제적 기반이 튼튼했으며, 후일 김종서의 아들 김승벽이 계유정난 이후 전의 사람 이로(李老)의 집에 피신하였다는 사실이 있어 그 사실을 더욱 확고하게 해준다. 이러한 인연으로 월곡리에는 요당서사가 건립되어 김종서와 함께 계유정난으로 피화된 황보인(皇甫仁), 정분 등이 함께 배향되었으나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터만 남아 있다.

김종서유허지김종서 장군의 순천김씨 가문이 멸문을 당한 이후 현재까지 다른 가옥이 건축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면서 ‘김종서 생가지’로 불리었다. 의당초등학교 개교(1927년) 이후 현재까지 학생들의 역사 교육 장소로 보존해 왔으며, 의당 초등학교를 건립할 때에 이 부지를 확보하여 관리하였다.

1960년대까지 의당초등학교(당시 의당국민학교)에서 학교와 학생 중심으로 관리하던 생가지는 1981년 공주시(당시 공주군)에서 ‘충익공절재김종서장군유허비(忠翼公節齋金宗瑞將軍遺墟碑)’를 세우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이 비들은 모두 1980년 박천규가 짓고 정태희가 써서 세웠다.

[위치]

공주시청에서 627번 도로를 타고 의당면 방면으로 약 9㎞를 직진하면 의당면 면소재지가 나온다. 면소재지에서 다시 691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6㎞ 정도를 더 가면 월곡리가 나오는데 월곡리비계실이 그 곳이다. 의당초등학교와 인접한 곳에 있다.

[현황]

김종서유허지는 유형의 대상 유적이 없고 고증의 어려움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최근 그 한계와 문제점들이 극복되어 공주시에서는 김종서 장군을 공주의 인물로 추앙하고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5년 10월 3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적혀있고 조선왕조실록과 순천 김씨 족보에 따르면 김종서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종서가 일가친족들이 있는 순천과 한양 양쪽을 쉽게 오갈수있도록 공주에 세거하였는데 세거지를 탄생지로 하여 기념물을 세우는 것은 잘못됐고 역사를 왜곡하는 겁니다. 2011.08.15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