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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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蘭秀 |
영어음역 | Im Nansu |
영어의미역 | Im Nan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고려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 낙향하여 살던 충신.
[가계]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1342년(충혜왕 복위3)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숙(林淑), 어머니는 유씨(劉氏)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맏이는 임모(林摹)로 수사(水使), 둘째는 임목(林穆)으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는 임서(林叙)로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校尉左軍司直), 막내는 임흥(林興)으로 위의장군(威毅將軍)을 지냈다.
[활동사항]
32세의 나이로 1374년(공민왕 23)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오른쪽 팔이 적에게 잘리자 잘린 팔을 화살통에 넣고 싸워 전승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흥복도감(興福都監), 녹사(錄事), 낭장(郎將), 호군(護軍) 등을 거쳐서 공조전서에 올랐으나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우자 한 하늘 아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현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으로 낙향하였다. 1407년 향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합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419년(세종 1)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않은 임난수의 사당에 ‘임씨가묘(林氏家廟)’의 편액을 내리고 불천지위(不遷之位)로 모시도록 하였다. 또한 나성일구강산(羅城一丘江山)이라 하여 사패지(賜牌地)를 지급하였는데, 고려시대 절터가 있던 나성리 일대와 현재의 계룡면 양화리 부근으로 추측된다. 이후 이 지역은 부안임씨의 가전지지(家傳之地)가 되었다. 1682년(숙종 8) 송시열이 ‘고려임장군신도비(高麗林將軍神道碑)’를 세우고 “전서공의 몸을 지킴이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같다”라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실행한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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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 [묘소] 수정 | 묘소 주소를 연기군 동면 합당리를 합강리로 수정 |
2012.05.07 | 아들 성씨 정정 | 오 : 맏이는 최모(崔摹)로 수사(水使), 둘째는 최목(崔穆)으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는 최서(崔叙)로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校尉左軍司直), 막내는 최흥(崔興)으로 위의장군(威毅將軍)을 지냈다. 정 : 맏이는 임모(林摹)로 수사(水使), 둘째는 임목(林穆)으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는 임서(林叙)로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校尉左軍司直), 막내는 임흥(林興)으로 위의장군(威毅將軍)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