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592 |
---|---|
한자 | 忠孝金宗瑞-金承珪旌閭 |
영어의미역 | Memorial Monument for Loyalty Filial Piety Gim Jongseo and Gim Seunggy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 산4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성격 | 정려 |
---|---|
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04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 산45 |
[정의]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에 있는 정려로 김종서의 충절과 김승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
[개설]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에 있는 이 정려는 김종서(金宗瑞)[1390~1453]의 충절과 아들 김승규(金承珪)[?~145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4년(순조 4)과 1747년(영조 23)에 각각 명정을 받아 건립된 것으로 김종서 장군 묘역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위치]
공주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국도 36호선을 따라 8㎞정도 가다보면 장기면소재지가 나온다. 소재지에서 조치원 방향으로 약 400m 정도 더 가면 대교(大橋)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 도로 왼쪽에 김종서 장군 묘역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1.5㎞를 가면 김종서의 묘역이 나오는데 정려는 묘역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김종서와 아들인 김승규의 정려는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804년(순조 4)과 1747년(영조 23)년에 각각 명정을 받아 건립 된 것이다.
김종서가 명정 받기까지의 과정은 알려진 기록들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계유정난 때 죽은 후 그에 대한 신원(伸寃)과 복관(復官)이 이루어지는 연장선상에서 명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종서의 신원·복관 등은 조선왕조실록이나 묘비문, 정려현판 뒤의 정려기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승규가 명정을 받게 되는 과정은 현판을 통해 알 수 있으며 명정현판에 의하면 1781년(정조 5)에 명정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중 『영조실록』23년 11월 28일조 기사을 찾아보면 그가 훨씬 전인 1747년(영조 23)에 이미 명정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승규 명정현판 뒷면의 김종수(金鍾秀)[1728~1799]가 지은 기문에 의하면, 김종서의 11대손 지복(志復)이 상언하여 김승규가 효자명정을 받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현재의 정려는 공주시 김종서 묘역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후손인 김기원이 서산에서 보관하던 현판을 옮겨와 1981년 건립한 것이다.
[형태]
정려는 정·측면 각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사면은 홍살처리 되어 있다. 내부에는 김종서의 명정현판과 효자 김승규의 명정현판이 걸려있다. 김종서의 명정현판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 兼領經筵 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贈諡忠翼公 金宗瑞之門(219㎝×36㎝)라 기록되어 있으며 효자 김승규의 명정현판에는 孝子 通政大夫 兵曹參議 金承珪之門(219㎝×36㎝)라고 쓰여 있다. 또한 김종서와 김승규의 명정 현판 뒷면에는 복관, 시호, 명정 등의 사실을 기록한 이채(李采)[1745~1820]와 김종수(金種秀)가 지은 기문이 각각 새겨져 있다.
[현황]
현재 장기면 대교리에는 김종서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곳에는 김종서의 묘와 묘비, 그리고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기면 대교리에는 김종서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김종서의 묘소 묘비 등이 자리하고 있어 당시 순천김씨들의 세력을 추측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