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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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梁震彦旌閭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Yang Jine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백룡리 2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순영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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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초익공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92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백룡리 21 |
관리자 | 양재필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백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양진언의 정려.
[위치]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4㎞ 정도 가면 신풍면소재지 약간 못 미쳐 청양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갈림길 직전에 도로 왼쪽(농협 정미소 쪽)으로 백룡리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1㎞ 정도 가면 백룡리 오름실이 나오는데, 효자 양진언 정려는 이 마을 어귀 도로 왼쪽에 있다.
[변천]
효자 양진언 정려는 1892년(고종 29)에 명정을 받아 건립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정려가 세워질 당시의 위치나 형태는 알 수 없지만, 후손들의 제보에 의해 1932~1933년 즈음에 양진언의 증손인 양주한(梁柱漢)이 자신의 집 앞에 3칸의 작은 건물을 짓고, 그 가운데 칸에 명정 현판을 가져다 걸어두었다고 한다. 따라서 본래의 명정 현판이 다른 곳에 있었는지, 아니면 종가에 걸려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양주한에 의하여 한 차례의 이건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양주한의 사망 후, 1956년 문중에서는 양진언의 묘소가 있는 공주군 신풍면 백룡리로 효자 양진언 정려를 옮겨 세웠다. 그 후 문중에서는 정려가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선조의 효행이 사장될 우려가 있다 하여 1998년에 공주시의 지원을 받아 백룡리로 정려를 이건하였으며, 1999년에는 충청남도와 공주시의 지원을 받아 단청을 하고 담장을 설치하였다.
[형태]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초익공 맞배지붕 양식이다. 팔각 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사면은 홍살로 처리하였으며, 정려 주변에 담장을 둘렀다. 정려 안에는 조봉대부동몽교관을 증직받은 효자 양진언의 정려임을 기록한 명정 현판이 걸려 있는데, 말미에 1956년에 정려를 이건하면서 현판을 새로 만들었다고 기록하였다. 정려 중앙에는 1998년에 세워진 비석이 있는데, 증손인 양상학(梁相學)이 쓴 ‘증조봉대부동몽교관공효행실적(贈朝奉大夫童蒙敎官公孝行實蹟)’이라고 새겨 넣었다.
[의의와 평가]
효자 양진언 정려는 남원양씨의 사족 활동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현재 정려가 있는 신풍면 백룡리에는 남원양씨가 17대째 거주하고 있는데, 총 70여 가구 중 20가구 정도가 남원양씨이다. 비록 지금은 남원양씨의 비중이 적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남원양씨들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다른 성씨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