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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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李玖相旌閭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Yi Gusa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15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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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50년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155 |
소유자 | 여주이씨 함양공파문중 |
관리자 | 여주이씨 함양공파문중 |
문화재 지정번호 |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22호 |
문화재 지정일 | 1997년 6월 5일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구상의 효자 정려.
[위치]
공주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가다가 사곡면과 신풍면 경계를 지나 1㎞ 정도 더 가면 신풍면 영정리 영정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에서 100m 정도 못 미쳐 도로 오른쪽에 영정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홍살문이 있고, 여기서 다시 500m 정도 더 올라가면 여주이씨 가문의 재실인 필점재(畢霑齋)와 추원사(追遠祠)가 나온다.
[변천]
효자 이구상 효자정려는 원래 1850년(철종 1)에 명정을 받아 여주이씨 종가(宗家)의 대문에 정문의 형태로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명정을 받은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 후 1867년(고종 4) 재실인 필점재(畢霑齋)를 중건하면서 현판을 현재의 위치에 옮겨 걸었다고 전한다.
현재 이구상의 명정 현판이 걸려 있는 필점재는 후손들에 의하면 1630년(인조 8) 창건된 것이라고 한다. 임헌회(任憲晦)가 지은 『필점재기(畢霑齋記)』에 의하면, 필점재는 여주이씨의 공주 입향조인 이지화(李志和)의 후손들에 의해 창건된 것이며, 이후 세월이 지나며 퇴락하자 이함중(李諴中)과 이구상의 아들 이종호(李鍾浩)가 중건의 뜻을 세웠고, 이종호의 아들 이남구(李南九)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중건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무렵, 이구상의 손자인 이남구가 고향을 떠나 타지로 이거하게 됨에 종가에 걸려 있던 이구상의 현판을 필점재로 옮겨와 보관하게 되었다. 1998년 공주시의 지원을 받아 필점재를 중수하고 정려 현판을 보수하였다.
[형태]
마을 입구 홍살문으로부터 시작하여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필점재가 위치해 있다. 여기에 효자 이구상과 이종호의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이구상지문경술이월일명정효자증통훈대부사헌부감찰이종호지문광서계사명정(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李玖相之門庚戌二月日命旌孝子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李鍾浩之門光緖癸巳命旌)’이라는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1997년 6월 5일에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효자 이구상 효자정려는 여주이씨의 입향 과정과 사족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신풍 지역의 여주이씨들은 효자 이구상 효자정려가 있는 신풍면 영정리와 그 주변의 산정리, 동원리에 많이 살고 있다. 1982년에는 여주이씨의 공주 입향조인 이지화의 5대조 묘소를 경기도 반월에서 공주 신풍면 영정리 무정동으로 이장하여 새롭게 선영을 마련하였다. 이때 이필택(李弼澤) 등의 주도로 필점재 오른쪽에 추원사(追遠祠)를 세웠고, 이지화의 5대조를 포함한 여주이씨 선대 160여 인을 제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