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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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舞踊 |
영어의미역 | Danc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선 |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행해지는 몸짓을 통해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개설]
무용은 인간이 취락 집단을 형성하면서부터 자연에 대한 외경(畏敬)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종교 의식이나 무속 행사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왕권 정치가 확립됨과 더불어 오늘날과 같은 무용 본래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궁중에서는 전문 무용가를 두고 궁궐의 연례(宴禮)에 이용하였다.
[변천]
공주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관청이 있었던 충청남도의 중심지로서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연회 등이 많아 일반 타 지역에 비해 무용 공연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공주시 웅진동 지역에 음악청이 있었으며 수많은 소리꾼들이 공주에서 활동한 점 등으로 보아 음악과 무용이 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연회에서 공연된 무용으로 현재까지 전래되는 것은 없으며 이러한 무용에 대한 특별한 기록도 없는 실정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민속 무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굿판에서 벌이는 무당의 춤이 굿의 일부분으로 존속하는 것이 가장 흔한 사례이나 공주 지역의 굿은 ‘앉은 굿’으로 선거리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무속과 관련된 춤도 전래된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미하지만 두레 놀이판에서 공주 지역의 독특한 춤사위를 보존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칠월 칠석부터 백중 사이에 벌어지는 여름 두레 먹는 날의 풍습은 마을의 전체 구성원들이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여는 작은 축제 마당으로 다양한 춤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거름새춤]
거름새춤은 두레 일판에서 가장 흔하게 추었던 춤으로 풍장의 ‘칠채’ 또는 ‘물풍딩이’가락에 맞추어 추는 춤을 이르는 말이다. 힘을 빼고 가락을 타면서 걸어가는 행동과 흡사한 모습으로 처음에는 단순하게 걷는 춤사위만 반복하다가 흥이 일면 어깨 짓과 팔 동작을 더 하지만 팔을 어깨 높이로 올리지 않고 허리 아래 부분에서 노는데 이는 양반 고장의 아낙네들이 허리 단이 짧은 저고리를 입고 팔을 올려 출 수 없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공주시 계룡면의 경천 호미 씻기 놀이·열두대징이 풍장놀이, 공주시 신풍면 선학리 지게놀이,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의 여름 두레 께끼 춤판 등의 민속 놀이에 두레꾼들이 추는 춤이며 이외의 일반적인 두레 놀이판에서도 흔히 추어졌다.
[꽃나비춤]
꽃나비춤은 두레 일판의 절정에서 추는 춤으로 일명 ‘무동이춤’의 충청도 사투리인 ‘무딩이춤’으로 불린다. 장정의 어깨 위에 소녀를 세워 추는 춤이나 소녀를 세우지 않고 14~17세의 소년 중 재주 좋은 아이에게 여자의 옷을 입히고 분단장을 하여 춤을 추게 했다. 꽃나비춤은 장정의 몸에 몇 명을 세우느냐에 따라 단무동, 삼무동, 오무동으로 불리고 있으며 꽃나비 춤사위는 단무동이 다양하고 오무동이 가장 단조롭다.
[농기춤]
농기춤은 두레 풍장 판재 중 마지막 판재에 들어있는 춤으로 농기를 신성시하는 마을에서는 농기춤이라 하지 않고 ‘농기가 노신다’라고 표현한다. 농기춤은 장정 혼자 농기를 들고 추는 춤이다. 5~7m에 이르는 대나무 깃대에 3m에 이르는 깃발이 매달린 농기의 무게는 장정 혼자 드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이 깃대를 한손으로 들고 춤을 추거나 깃대를 들고 돌며 농기를 45도 또는 90도로 눕혀 들고 도는 춤사위로 구성된다.
음악은 풍장의 굿거리나 늦을 마치(4박)에 맞추고 별도의 음악은 사용하지 않는다. 두레 풍장의 마지막 판재 형태로 운영되어 공주시 일원에 모두 있었으나 특히 공주시 반포면과 계룡면에서 성행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농기춤이 추어진 것은 2001년 백제문화제 개최 시 공주시 풍물단이 공주 큰 풍장마당에서 공연한 것이다.
[허튼춤(흔틀춤)]
일명 병신춤이라 불린다. 지역에 따라서는 병신춤과 허튼춤을 구분하여 말하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병신춤은 허튼춤의 일부였다. 일정한 춤사위를 갖지 않고 자신의 흥에 따라 춤을 추면서 무엇인가 흉내를 내는 특징을 지닌다.
예를 들어 술 취한 사람, 난봉난 여인의 몸짓, 기이한 행동을 하는 짐승이나 사람의 흉내를 내기 때문에 흥이 좋고 몸짓이 다양하며 종극에는 장애인들의 몸짓을 흉내 내는데 수수깡을 입에 물고 추는 ‘언청이춤’, 등에 바가지를 넣고 추는 ‘곱사춤’, 팔을 흔드는 ‘곰배팔춤’, 다리를 저는 ‘절뚝발이춤’ 등이 많이 추어 졌다.
별도로 정해진 음악은 없고 장구 장단이나 풍장 가락이나 소리꾼의 소리에 맞추어 추고 공주 전역에서 즐긴 춤이며 공주시 의당면 수촌2리의 마을 풍장판에서 특히 성행하였다.
[깨끼춤]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에서 성행하여 공주시 유구읍과 신풍면 지역에서만 추던 춤이다. 1890년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추기 시작하였는 데 춤사위가 재미있어 마을 사람들이 따라 추기 시작하였고 백제문화제 충청남도 풍장대회에 공주시 유구읍 대표로 신영리 풍장이 출전하면서 깨끼춤을 집단화하여 추었다.
깨끼춤을 추는 사람은 ‘더거리’라 불리는 덧옷을 입고 악기를 잡지 않고 춤만 춘다. 양반을 흉내 내는 거드러기, 자리를 옮기지 않고 제자리에서만 추는 자국춤, 앞으로 나갈 듯 말 듯 하여 일명 갈동말동이라고 부르는 옴짝이, 여인들이 치맛자락을 들썩거리 듯 더거리를 잡고 추는 깨끼잽이,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가면서 장애인을 흉내 내는 종종이, 어깨만 들썩이는 어깨춤 등이 있었다.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 외의 마을에서는 깨끼춤을 전부 추는 사람이 없었고 부분적으로 추는 사람만 있었는데 일부 마을에서는 남자가 여인네 춤을 춘다하여 금기시하였다. 또한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 일원의 마을에서는 두레의 소멸과 마을 풍장의 쇠퇴와 함께 사라져 지금은 춤을 추는 사람이 없다. 다만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 창고에 백제문화제 당시 입었던 의상이 전한다.
[양반춤]
양반춤은 전통시대에 공주 두레 풍장과 연희 풍장에서 성행하였던 춤이다. 두레 풍장이나 안택 풍장 시 풍장패를 인도하는 길나래비에게 갈칡으로 만든 수염을 달고 장죽을 물고 두루마기에 갓을 쓴 양반을 꾸며 앞장서서 걸으며 춤을 추게 하였다.
왼팔로 뒷짐을 지고 오른팔을 심하게 흔드는 뒷짐질, 팔자걸음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거드름이, 장죽을 오른손에 잡고 팔을 뻗어 꾸벅대는 곰방대 춤사위가 있으며 양반이라 하여 양팔을 모두 쓰는 춤사위가 없는 특징을 지닌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모든 마을에서 행하였다.
[무용가]
2008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무용인으로는 공주대학교 무용학과 한국무용 전공 교수로 퇴직하여 현재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인 유학자, 공주대학교 무용학과 현대무용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김신일, 공주대학교 무용학과 사회무용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박남미, 공주대학교 무용학과 발레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박경숙, 공주대학교 무용학과 한국무용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최선 등이 있다.
2008년 현재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용인을 보면 한국무용협회 공주지회 회장을 지낸 강희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 무용 교사 곽기현, 공주여자고등학교 무용 교사 박상은, 공주북중학교 무용 교사 박용란, 공주금성여자고등학교 무용 교사 황희진, 옥영실무용단을 운영하고 있는 옥영실, 천안시립무용단 상임 단원 조유진, 최선무용단 단원인 박혜정, 김현주, 박선정, 신나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