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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590
한자 部曲
영어음역 Bugokje
영어의미역 Bugok System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경복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속한 특수한 지방 하급 행정 구획.

[개설]

우리나라 전근대 사회에 존속하였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부곡 집단은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시대의 부곡 집단이다. 고려시대는 부곡 이외에도 소(所)·처(處)·장(莊) 등 특수한 집단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공주 지역에서 부곡과 관련된 큰 사건이 12세기 고려시대 무인 정권기에 일어났다. 바로 명학소의 난이다.

[명학소의 난]

본래 고려에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전업으로 생산하는 사람들의 집단과 지역이 지정되어 있었다. 가령 금, 은, 동 등 철과 같은 금속 광물의 생산과 제품 생산, 먹, 종이, 기와, 도자기 등 국가 수요 물품의 생산을 위하여 특정 지역을 지정하여, 이를 전업으로 하도록 의무를 지웠던 것인데, 이 같은 지역을 소(所)라고 불렀다.

공주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생산 물품은 알 수 없지만, 금단소(今丹所), 갑촌소(甲村所) 등 몇 개의 소가 지정되어 있었다. 명학소도 그중 하나였다. 이들 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매우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하였다.

1170년(의종 24) 수도 개경에서는 무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새로 성립된 무인 정권 하에서 지방 사회의 폐단은 더욱 심화되어 갔고, 마침내 12세기 후반 이후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민란의 봉기가 야기되기에 이른다. 그 민란의 선구가 되었던 사건이 공주 명학소민의 봉기였다.

명학소에서는 망이·망소이 형제가 주동이 되어 1176년(명종 6)에 봉기를 하였다. 이들은 ‘산행병마사’를 자칭하면서 공주 지역을 장악하고 이를 거점화하였다. 정부는 사신을 파견하여 이들을 해산시키려 했다가 여의치 않자 군사 3천 명을 파견하여 토벌하였지만, 명학소군의 공격에 대패하였다.

이에 정부는 진압책으로부터 회유책으로 방침을 전환하여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키고 주민들을 회유하였다. 명학소를 충순현이라는 이름의 현으로 승격시킨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소민의 신분을 일반민으로 승격시키고, 노역에서 해방시킨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학소민은 예산 등지까지 공략하였다. 정부는 다시 무력 진압을 결의하고, 대군을 파견하였다. 1177년 명학소민군은 일단 정부와의 타협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바로 그 해 2월 명학소민은 다시 봉기를 하였다. 이들은 예산의 가야사와 천안의 홍경원 등지를 점거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정부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어 1년 반 동안 공주 일대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민중 봉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01 본문 내용 수정 충청북도->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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