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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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項谷里 |
영어음역 | Hanggok-ri |
이칭/별칭 | 항골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항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향림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조선 중기 낙동강이 흘러들던 이 마을의 위치가 낙동강의 목[項]과 같다 하여 항곡(項谷)이라 하였다. 또는 낙동강과 감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라 물이 풍부하여 항곡 또는 항골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 뒷마, 아름마, 웃마 등이 있다. 뒷마는 마을 가운데 있는 정자나무 뒤쪽에 자리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마는 정자나무를 중심으로 마을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웃마는 마을 전체가 동쪽 높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초기 이후 평성방(坪城坊)에 속한 항곡동리였고, 1896년경 평성방이 평성면으로 개칭되면서 평성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성면, 망장면(望長面), 서내면(西內面)이 고아면(高牙面)으로 통합되어 고아면 항곡동이 되었다. 1988년 동이 이(里)로 바뀜에 따라 선산군 고아면 항곡리가 되었고, 1995년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고아면 항곡리가 되었다. 1997년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고아읍 항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접성산이 서쪽에서 마을을 감싸고, 낙동강을 바라보며 공정들·두기들·말랑들·새만들·쑤안들 등의 기름진 평야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배산임수 지형의 마을이다. 뱅골·오리골·욱골·자랑골·차란모티이골 등의 골짜기와 진늪·범사둠벙 등이 있다. 예강리·봉한리 주민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마을 앞 다동리 넓은 들은 경지 정리와 수리 시설 등의 농업 기반 시설이 한국 농토의 표준이라 할 만큼 잘되어 있다.
[현황]
고아읍사무소 남쪽 4㎞ 지점에 있는 마을로,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2.74㎢이며, 총 446가구에 1,298명[남 657명, 여 64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아읍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초계변씨를 비롯하여 밀양박씨·전주이씨·영일정씨·김해김씨 등이 많이 거주한다.
동쪽으로 예강2리, 서쪽으로 접성산, 남쪽으로 봉한리, 북쪽으로 예강리와 접하며, 넓고 기름진 평야에서는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국도 25호선과 국도 33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며, 두기들 남쪽에 두기다리, 쑤안들 중간에 쑤안다리가 있다.
1940년대 마을 앞들 수리 시설을 완비하였고, 1960년대 전기가 보급되고 전화가 가설되었다. 1970년대 중반 경지 정리가 이루어졌고, 1978년 마을 회관이 건립되었다. 1980년대 낙동강 호안 공사를 완성하였고, 비가 내리면 접성산에서 내려와 마을 한가운데 들로 흘러드는 하천의 물길을 봉한리 쪽으로 돌려 낙동강으로 흘러들게 정비하였다.
1987년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안길을 포장하였고, 1989년 경로당과 마을 구판장을 지었으며, 1990년 마을 간이 상수도를 가설하였다. 1990년대에 예강2리를 잇는 도로를 넓혀 포장하였고, 1995년경 초원아파트가 완공되어 주거 환경 변화의 선도 역할을 하였다.
교육기관으로 현일고등학교·현일중학교, 금융기관으로 고아농협 항곡지소, 산업체로 옥해전자·일미농장(소·말·양 사육)·영남정공(전자 부품 제조)이 들어서 있는 등 읍 소재지 못지않게 번화한 지역이다.
예강리, 항곡리, 봉한리 등지의 낙동강 유역에 사방 사업을 한 기념으로 1935년에 세운 낙동강유역사방비가 뒷마 동북쪽에 있었는데 1980년 송림리로 이전하였다가 1990년대에 안동산림박물관으로 옮겼다. 오래전부터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를 지내 오다가 1970년대 이후 폐지되었다.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강리에서 흘러들어 온 낙동강 물이 항곡에 이르러서는 돌아서 흘러가니 명주실 한 타래를 모두 풀어도 끝이 닿지 않을 정도로 물이 깊었다고 한다. 지금도 도로 변을 파면 어느 곳이든 물이 잘 나오고 모래가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