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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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平里 |
영어음역 | Haepy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노수천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해평리는 솔미[松山], 보천, 상송(일명 산성), 뒷마, 골안, 남촌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솔미는 송산사가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인재 최현(崔晛)의 유허비가 있다. 보천은 낙동강 해평의 낙동강나루가 있어 소금배가 닿으며 해평들의 곡식을 안동 쪽으로 나르던 보천탄 자리이다. 상송은 해평산성이 있던 곳이다. 뒷마는 해평김씨 시조 김훤술(金萱述)의 신도비와 재사, 석상을 모신 해평동 시중사가 있는 곳이다. 골안은 해평현 때 군창과 병영이 있던 곳으로 원명은 안골로서 인재 선생의 현손인 증 좌승지공(體乾)께서 서울서 낙향한 자리로서 손자 6형제를 둔 맞집 자리로 안골(일명 골안)이라 하였다. 산성마, 군불이라고도 한다. 남촌은 상촌 남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고려시대에 해평윤씨·해평길씨가 세거하였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고, 조선 세조 때 검재(儉齋) 최수지(崔水智)가 정착하여 전주최씨 세거지가 되었다.
[자연환경]
팔공산 지맥이 서북으로 향하여 연봉을 이루고 조계산에서 다시 미석산을 이루는데, 해평리는 해평면의 진산인 미석산이 떨어져 나온 곳에 형성된 해평평야와 낙동강 변에 자리 잡고 있다.
[현황]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3.19㎢이며, 총 125가구에 283명[남 138명, 여 14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보천마을에 해평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양수장과 해평상수원이 있다. 유적으로 송산사 터, 해평동 시중사, 최현 유허비, 보천사 경내에 있는 선산 해평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92호), 구미 쌍암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05호), 해평동 북애 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1호), 완해군 최산휘(崔山輝)의 부조묘 등이 있다.
송산사는 1647년(인조 25)에 지은 사당으로 1657년(효종 8) 창림리로 옮겨 짓고 송산서원으로 승격하였다가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송산서당만 남게 되었다. 해평동 시중사는 해평면 오상동 도로변에 있던 해평김씨 시조 장렬공 김훤술의 석상을 모신 곳이다. 이 석상은 영험하여 기복하는 사람이 많이 찾아와 일명 영응사라고도 한다. 완해군 부조묘에는 완해군 초상화와 최광벽(崔光璧) 6형제의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다.
마을에 전해 오는 전설에 따르면, 해평리는 풍수지리상 행주형의 지형으로 옛날부터 우물을 파지 않았다. 보천사 경내에 있던 우물은 영험하여 충렬왕의 왕자 왕소군이 신병으로 고생하다가 이곳 우물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보천사가 폐허가 될 때 사찰의 모든 물품을 이 우물에 묻었다고 전해지나 지금 우물의 위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