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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147
한자 朴天衡
영어음역 Bak Cheonhyeong
이칭/별칭 사혁(士赫),해강(海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729년연표보기
몰년 1793년연표보기
본관 밀양
대표관직 사간원대사간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혁(士赫), 호는 해강(海岡).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박춘보(朴春普)이다.

[활동사항]

박천형은 1773년(영조 49) 37세로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 호남어사, 제주어사, 접위관, 사간원정언, 세자시강원문학·필선·보덕, 사헌부장령·집의, 홍문관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 황해도의 곡산현감, 공주목사, 병조참의, 승정원좌승지, 사간원대사간,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재임 중의 활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774년(영조 50) 호남어사로 재직 중 해남(海南)의 향인(鄕人)이 좌수(座首)를 무고한 괘서고변사건(掛書告變事件)이 있었는데 박천형은 접고어사(接拷御史)의 중임을 맡고 일을 잘 처리했다. 또 정조가 즉위하여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모함하여 죽게 한 간당들을 처벌하려 했을 때 박천형은 그때 시행된 과거는 간당들이 치룬 것이었고 그 사람들은 지금은 죄인으로 되어 있고 또 부정으로 등과시킨 것이니 그 과거를 무효로 하자고 상소했다. 정조는 과방(科榜)에 관한 일은 박천형의 말이 당연하다고 비답했다.

정조가 호남어사 때의 실적을 보고 박천형을 제주어사에 명하면서 “그곳은 바다가 가로놓여 육지와 떨어져 있어 조정의 덕이 능히 미치지 못하고 백성들이 우매하니 잘 위문하고 또 백성들로 하여금 조정의 덕음(德音)에 감화케 하고 그곳 물정을 자세히 기록하여 보고하라.”라 하였다. 부임하여 민정을 살피고 미리 준비해간 어제(御題)로써 문임과(文任科)를 보여 김광(金壙), 변경우(邊景祐), 강성익(康聖翊) 등 셋을 시취하여 뒤에 전시에 응하게 하였다. 또 황해도의 곡산현감 재직 시 극심한 흉년이 들어 보관하고 있는 곡식으로 구제할 길이 없게 되자 상소로 4,000여 명이나 유리걸식하고 있으니 도와달라 간청하여 정조의 윤허를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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