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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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鎭弘 |
영어음역 | Jang Jinhong |
이칭/별칭 | 준극(俊極),창여(滄旅)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인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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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 |
성별 | 남 |
생년 | 1894년 |
몰년 | 1930년 |
본관 | 인동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장진홍(張鎭弘)은 자는 준극(俊極), 호는 창여(滄旅)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1894년(고종 31년) 6월 6일 인동의 옥계동 문림리 352번지에서 태어나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을 벌이다가 1930년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활동사항]
장진홍은 1907년 4월 1일 현 인동초등학교의 전신인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졸업하였다. 특히 인명학교 시절에는 애국지사였던 장지필(張志必)에게 사사하여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16년 조선보병대를 제대한 뒤 고향의 죽마고우였던 이내성을 만나 그의 권유로 비밀 항일 결사 조직인 광복단에 입단하였다. 1918년에는 중국 봉천과 러시아 하바로스크로 가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3·1운동에 관한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7월에 인천항에 들어온 미국 군함의 승무원인 조선인 김상철에게 그 동안 조사한 기록을 건네주면서 일본 총독부 정치의 잔혹상을 구미 각국에 폭로하도록 부탁하였다.
장진홍은 1926년 1월 이내성을 만나 국제공산당 입당을 권유받고 승낙하였다. 1927년 4월에는 국제공산당원인 일본인 호리키리 모사부로[堀切茂三郞]를 소개받아 그로부터 폭탄 제조법을 전수받은 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발물을 배달시켜 폭발 사건을 일으켰다.
일본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1928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조선인 친일 경찰에 의해 1929년 2월 14일 체포되었다. 1930년 대구지방법원 복심원에서 사형이 언도되고 항고도 기각되자 1930년 7월 31일 대구형무소 감옥에서 자결하였다. 시신은 8월 2일 칠곡군 석적면 남율동 선영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지역에서는 1953년 7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동 임수대공원에 기념비를 세웠으며, 2001년 11월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동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