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109 |
---|---|
한자 | 田佐命旌閭扁額 |
영어의미역 | Jeongryeo Plaque of Jeon Jwamyeo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 1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광수 |
성격 | 편액 |
---|---|
제작시기/일시 | 1678년 |
제작지역 | 구미시 무을면 |
재질 | 목재 |
높이 | 22㎝ |
너비 | 195㎝ |
소장처 | 연안전씨 종중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 141 |
소유자 | 연안전씨 종중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전좌명(田佐命) 정려편액.
[개설]
전좌명은 연안인(延安人)으로,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중정대부삼사좌윤 전목의 증손자이다. 관직은 광흥창주부로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을 추증받았다. 전좌명은 1421년(세종 3)에 출생하여 1524년(중종 19)에 별세하였는데, 향년 104세였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의 상을 당하자 6년간 시묘하였다.
이후에도 삭망(朔望)으로 묘소를 찾아갔는데, 향합(香盒)을 잊어버리고 오자 정성이 부족함을 한탄하며 통곡하던 중 백오(白烏)가 향합을 물고 왔다. 후에 명종(明宗)이 “백오어함향합남산대전민(白烏御含香盒南山代田民: 흰 까마귀는 향합을 물어오고 남산은 밭과 백성을 대신한다)”라는 어제시판(御製詩板)을 하사하였다. 전좌명의 외손녀가 성종의 비(妃) 정현왕후이며 중종의 모친이다. 1472년(성종 3)에 효자 정려로 정표되었다. 후에 영남사림이 무동서원에 모셔 향사하였다.
[형태]
정려비각 내에 장방형의 긴 판목을 편액으로 가공하여 옻칠을 하고, 해서체로 판각하여 주서(朱書)로 제명하였다. 편액에는 ‘효자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영경연사행광흥창주부전좌명지려(孝子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行廣興倉主簿田佐命之閭)’라고 해서체로 각자되어 있다. 글자의 크기는 4.5×5.3㎝이다.
[의의와 평가]
무을면 무이리에 정착한 연안전씨 문중의 효자 전좌명의 효행 사실과 104세까지 장수한 생애, 명종의 어제시(御製詩)가 역사적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어 그 가치와 의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