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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교리 비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727
한자 福橋里碑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규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97년 - 구봉서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44년 - 구봉서 사망
현 소재지 복교리 비석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복교리 장좌 마을]지도보기
성격 청덕비
관련 인물 구봉서
크기(높이,너비,두께) 180㎝[비신 높이]|65㎝[비신 너비]|18㎝[비신 두께]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 장좌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청덕비.

[개설]

복교리 비석구봉서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청덕비이다. 구봉서의 본관은 능성, 자는 경휘, 호는 낙주이다. 이조 좌랑 구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봉사 구광원이고, 아버지는 군수 구계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이기의 딸이다. 장단의 낙하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권필에게서 시를 배웠다. 1618년(광해군 10)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1624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홍문관 수찬을 역임하고 정언이 되어 반정 공신에 아무 공 없이 오른 사람들을 깎아내릴 것을 강력히 주청하였다.

1631년 수찬을 거쳐 이조 좌랑이 되어 박지계가 주장한 인조의 사친 추숭을 반대하다 체직되었다. 얼마 뒤 사가독서하고 응교·승지를 거쳐 병조 참의가 되었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아 서천 군수로 좌천되었다가 나주 목사를 거쳐 1638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구봉서는 사람됨이 강직하였으며, 재치가 있었고, 권력에는 추호도 아부하려 함이 없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건립 경위]

복교리 비석구봉서의 청렴하고 고결한 덕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건립한 것이다.

[위치]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소재지에서 1.8㎞ 떨어진 대야~김제 간 국도 29호선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복교리 비석 비신의 높이는 180㎝, 너비는 65㎝, 두께는 18㎝이다.

[금석문]

복교리 비석에는 ‘순찰사 구공 봉서 구휼 청덕비(巡察使具公鳳瑞寬恤淸德碑)’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현황]

복교리 비석은 귀부와 이수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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