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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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山面羅浦面紆州黃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두헌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나포면에 있는 우주 황씨 참판공파의 집성촌.
[개설]
우주황씨(紆州黃氏) 참판공파(參判公派)는 15세기 말 또는 16세기 초 경릉 참봉(敬陵參奉)을 지낸 황준(黃濬)[시조 황거중의 14세손]이 고산에서 임피(臨陂)로 이주한 이후 황준의 후손들이 성산면 대명리, 부곡리, 나포면 부용리, 주곡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명칭 유래]
주곡리는 임피군 하북면 지역으로서 숫골 또는 주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외곡리, 대동리, 자양리, 하주리, 상주리, 서포리의 각 일부와 북삼면의 동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주곡리라 해서 나포면에 편입하였다.
[형성 및 변천]
우주황씨의 시조 황거중(黃居中)은 자(字)가 경덕(敬德)이고, 호(號)가 사가재(四佳齋)이다. 1358년(공민왕 7)에 태어났고, 1433년(세조 15)에 사망하였다. 고려 말에 이성계가 아기발도를 남원 운봉에서 정벌할 때에 종사관이 되어 용의주도한 묘책을 내어 왜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 정당문학에 임명되어 각 주와 군에 교수와 훈도의 직책을 두게 하였고, 공조 전서와 이조 판서에 임명되었으며, 불교를 물리치고 성리학을 진흥시킨 공로로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나이가 들어 고향 우주로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니, 학문을 숭상하는 풍습이 크게 일어났다. 황거중의 13세손 황준(黃濬)은 15세기 말 또는 16세기 초 무렵에 고산에서 처가(妻家)가 있는 임피로 들어와 거주하였다. 황준의 장인은 송회열(宋恢烈)[본관은 여산]이다. 황준은 경릉 참봉을 지냈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다시 찰방(察訪)을 수여받았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현황]
황준(黃濬)이 임피로 입거한 이후 황준의 후손들이 성산면 대명리, 부곡리, 나포면 부용리, 주곡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임피에 세거한 황준의 후손들은 황준의 증조인 황기가 호조 참판을 지냈다는 연유로, 자신들을 우주황씨 참판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황준의 아들 황세우는 제주 고씨 고서(高恕)의 사위가 되었다.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성산면 대명리 대명 마을에 우주황씨가 30가구 180명, 부곡리 후죽 마을에 20가구 67명, 나포면 부용리 일대에 31가구 128명, 주곡리 일대에 49가구 185명이 각각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현재 우주황씨 집성촌의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실정을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