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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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沃溝邑平澤林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두헌 |
소재지 | 평택임씨 집성촌 - 군산 옥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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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평택임씨 집성촌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에 있는 평택 임씨 평원부원군파 집성촌.
[개설]
16세기 중엽에 임덕온(林德溫)이 옥구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읍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은 자신들을 평택임씨 평원 부원군파라고 부르고 있다.
[명칭 유래]
옥구읍은 옥구군 내의 지역이었으며, 정지산[영병산]이 있기에 정지산면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평택임씨 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지내다가 관리들로부터 시기와 모함을 받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평택 용주방에 정착하였다. 이후 신라 에서 이부 상서를 지냈으며, 변방을 침범한 적병을 격퇴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임팔급의 후손인 임언수(林彦修)는 충렬왕 때 뚜렷한 공훈을 세워 재상이 되는 등 당대 명신(名臣)이었으며, 충정(忠貞)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고,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에 봉군되었다.
16세기 중엽에 임덕온(林德溫)이 옥구에 입거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옥구읍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이들은 자신들을 평택임씨 평원부원군파라고 부르고 있다. 고종의 밀지에 의해 조직된 독립 의군부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한 임병찬[1851~1916]은 임덕온의 11세손이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읍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옥구읍 일대에 평택임씨가 19가구 75명[선제리 정리 마을 2가구 6명, 선제 마을 1가구 1명, 우치산 마을 1가구 8명, 상평리 읍내 마을 1가구 6명, 광월 마을 6가구 28명, 어은리 칠호촌 마을 1가구 4명, 어은 마을 1가구 1명, 옥정리 척동 마을 4가구 12명, 이곡리 신평 마을 2가구 8명] 살았다고 한다. 현재 평택임씨 집성촌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