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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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健元陵神道碑(一九零零)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Geonwonreung(1900) |
이칭/별칭 | 건원릉표(健元陵表)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의 신도비.
[건립 연혁]
건원릉 신도비(1900)는 비문에 따르면 1900년(광무 4)에 세워졌다. 『고종실록(高宗 實錄)』에 따르면 1900년 6월 12일 고종이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한 왕실 무덤들의 표석(表石)을 정비하라는 명을 내린 바 있다. 신도비 앞면의 비제(碑題)와 뒷면의 음기(陰記)는 모두 고종이 직접 썼는데, 『고종실록』의 1900년 6월 19일 기사에서 고종이 건원릉 등의 표석에 대해 앞면과 뒷면을 직접 쓰겠다는 명을 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형태·구성]
건원릉 신도비(1900)는 화강암 재질의 이수(螭首)·귀부(龜趺)·대좌(臺座)와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436.5㎝이며 폭은 207.5㎝이다. 신도비의 형태는 1409년(태종 9)에 세워진 신도비와 유사하다. 이수의 높이는 104.9㎝이고 폭은 112.3㎝이며, 가운데 아랫쪽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을 새기고 주변에 뒤엉킨 두 마리의 용을 조각했다. 비신의 높이는 232.0㎝이고 폭은 112.3㎝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대한 태조고황제건원릉(大韓 太祖高皇帝健元陵)'이라고 썼고 뒷면의 음기는 해서(楷書)로 썼다. 귀부의 높이는 65.2㎝이고, 세부 묘사는 1409년에 세워진 신도비와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좌우 대칭으로 새긴 귀갑문(龜甲文)이나 거북의 몸 아래에 조각한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 등 전체적 양식은 동일하다. 아울러 대좌의 높이는 34.4㎝이고 폭은 207.5㎝인데, 2단으로 구성된 대좌의 하단에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을 새겨 귀부의 앙련과 조화를 이룬 점도 1409년에 세워진 신도비의 양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관련 사건·일화]
『고종실록』에 따르면 1899년 12월 22일 태조를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로 추존하고 원구단(圜丘壇)에서 제례를 시행했다.
[가치 및 의미]
건원릉 신도비(1900)는 고종이 즉위 후에 자신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시행한 왕실 선조들에 대한 추숭 사업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아울러 18세기 정조(正祖) 이래 국왕이 직접 왕실 무덤의 비문을 쓰는 사례가 늘어나는데, 건원릉 신도비(1900)는 그 맥을 잇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