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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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祖 |
영어공식명칭 | Taej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4-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수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건원릉에 묻힌 조선 왕조를 개창한 왕.
[개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1335~1408)는 조선 왕조를 개창한 왕이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기반으로 고려 말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최영을 제거하고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고, 신흥 유신 세력과 손을 잡으며 개혁을 실행해 나갔다. 1392년 조선 왕조를 개창하고 태조가 되었다. 두 번의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믿고 의지했던 신하인 정도전과 아들들을 잃는 시련을 겪으며 만년에는 불교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다.
[가계]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335년(충숙왕 복위 4) 10월 11일 화녕부(和寧府) 흑석리(黑石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이다. 즉위 후 단(旦)으로 개명하였다. 아버지는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이고, 어머니는 정효공(靖孝公) 최한기(崔閑奇)의 딸인 영흥(永興) 최씨이다.
이자춘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의 천호(千戶)였다. 1356년(공민왕 5)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고려에 협력하여 공을 세우면서 고려의 관직을 받았다. 이때 이성계도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내부하였는데,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아 고려에서 무관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신의 왕후(神懿王后) 한씨와의 사이에 방우, 방과[정종], 방의, 방간, 방원[태종], 방연을 낳았고, 신덕 왕후(神德王后)와의 사이에 방번, 방석을 낳았다. 슬하에 5남 3녀, 서녀 2명을 두었다.
[활동 사항]
이성계는 1356년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처음으로 고려의 관직을 받았고, 1361년(공민왕 10) 아버지의 직을 계승하여 정3품 통의대부 금오위 상장군(通議大夫金吾衛上將軍) 동북면 상만호(東北面上萬戶)가 되었다.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되자 2,000명을 거느리고 제일 먼저 개경에 들어가 수복하고 전공을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원(元)의 장수 나하추를 격퇴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364년(공민왕 13) 종2품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승진하고, 1369년(공민왕 18) 동북면 원수(東北面元帥)가 되어 동녕부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1377년(우왕 3)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왜구를 격퇴하고, 1380년(우왕 6)에는 황산(荒山)의 큰 싸움에서 왜구를 섬멸하였다.
1388년(우왕 14) 명(明)이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는 문제로 고려와의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었다. 이에 고려는 4월에 요동 정벌을 결정한다. 이성계는 네 가지 이유로 요동 정벌을 반대하였다. 첫 번째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하는 것[以小逆大]은 옳지 못하다. 두 번째가 여름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夏月發兵]은 옳지 못하다. 세 번째가 나라를 들어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빈틈을 탈 것이므로[擧國遠征 倭乘其虛] 옳지 못하다. 네 번째는 지금 한창 장마철이므로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군사들은 질병을 앓을 것이므로[時方暑雨 弩弓解膠 大軍疾疫] 옳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주장은 수용되지 않았다. 이성계는 원정군의 우군 도통사가 되어 출병하였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고 창왕을 세우며 고려의 정치적,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성계는 1392년 7월 17일 개경의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르며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였다. 1393년(태조 2) 2월 15일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정하고, 1394년(태조 3) 8월 13일 한양(漢陽)을 새 수도로 결정하였다. 이때 개국 공신 정도전에게 수도 건설을 위임하여 1396년(태조 5) 9월에 종묘, 사직, 궁전, 시장, 도로, 4대문, 4소문 등을 완비하였다. 1398년(태조 7)에는 아들 이방원의 주도하에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이방원은 정도전과 이방석, 이방번을 죽이고, 형인 이방과를 새로운 세자로 세울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성계는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1400년(정종 2) 이방간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지만 실패하였고, 정종은 이방원을 세제로 정하고 11월 11일 왕위를 물려주었다. 태조는 태상왕(太上王)이 되었다. 1408년(태종 8) 5월 24일 이성계는 창덕궁(昌德宮)에서 광연루(廣延樓) 별전에서 사망하였다. 9월 9일 장사 지내고 능을 건원릉(健元陵)이라 했다.
[묘소]
태조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건원릉이다. 건원릉은 이후 조선 왕조 능제의 표준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1683년(숙종 9) 정의 광덕(正義光德)의 시호를 추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