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31 |
---|---|
한자 | 英祖元陵山陵都監儀軌 |
영어공식명칭 | Yeongjo Wolleung Salleungdogamuigwe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지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영조의 능인 원릉(元陵)을 조성하는 과정을 기록하여 1776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영조원릉산릉도감의궤(英祖元陵山陵都監儀軌)』는 1776년 영조가 사망한 후 영조의 능을 조성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분상용 의궤 2건을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어람용 의궤는 전하지 않는다. 산릉이란 국장 이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왕릉을 말한다. 원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영조원릉산릉도감의궤』는 산릉 조영을 위해 설치한 산릉도감(山陵都監)에서 간행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총호사(摠護使)는 좌의정(左議政) 김상철(金尙喆)이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산릉 조영이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1776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영조원릉산릉도감의궤』는 2책 35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로 33.3㎝, 세로 46.5㎝의 크기이며, 본문 한 쪽에 12행, 행당 24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으나 행당 글자 수는 일정하지는 않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를 그렸으며,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건륭사십일년병신삼월 일 산릉도감의궤 상하(乾隆四十一年丙申三月 日山陵都監儀軌 上下)'이다. 본문 종이는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구성/내용]
『영조원릉산릉도감의궤』는 서두에 목록이 있으며, 이어서 도설(圖說), 좌목(座目), 계사(啓辭), 이문(移文), 내관(來關), 예관(禮關), 감결(甘結), 논상(論賞) 및 각소의궤(各所儀軌)가 실려 있다. 도설은 산릉 조영에 관한 채색 그림과 설명을 실은 부분이다. 좌목은 도감 관원들의 명단이다. 계사는 행사와 관련하여 왕에게 올린 보고와 왕의 응답을 말한다. 이문, 내관, 예관, 감결 등은 관련 관서(官署) 간 오고 간 공문서를 모아 둔 것이고, 논상은 행사 후의 포상 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각소의궤는 도감에서 나누어 맡은 업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영조원릉산릉도감의궤』는 조선 후기 산릉 조성과 역역(力役) 동원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어 사회 경제사 연구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영조 원릉 산릉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