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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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雙磎寺靑鶴樓 |
영어음역 | Cheonghangnu |
영어의미역 | Cheonghangnu Pavilion of Ssanggye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곽승훈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7월 20일 - 하동 쌍계사 청학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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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쌍계사 청학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75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50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57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5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5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성격 | 건축물|누각 |
양식 | 맞배지붕 2층 누각|민도리 양식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쌍계사 |
관리자 | 쌍계사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은 것을 조선 후기와 근대에 중건한 건축물.
[위치]
쌍계사(雙磎寺) 경내의 금당 영역에 위치한다.
[변천]
하동 쌍계사 청학루(靑鶴樓)는 통일 신라 시대 진감 선사(眞鑑禪師)가 처음 창건한 이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으로 여겨지는데, 중건을 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사찰에 전해지는 여러 기록을 보면, 1675년(숙종 1)에 인계 선사(印戒禪師)가 중건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어 1750년(영조 26) 우하 선사(友霞禪師)가 조정에 상주하여 다시 중수하였다. 1802년(순조 2)에 들어와서는 화악 선사(華岳禪師)가, 1857년(철종 8)에는 채진당(採眞堂)이 중수한 사실이 전한다. 그 뒤 1900년(고종 37)대 초에 들어와 건물이 퇴락하자, 찬민 선사(粲玟禪師)가 발원하여 사찰에서 저축한 800금과 주지 범성(梵城)의 노력으로 팔방의 신자들로부터 보시를 받아 1915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1985년에 지붕을 한차례 고쳤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로, 산의 경사면에 누각(樓閣)으로 조성되어 정면에서 보면 2층이나 후면에서는 1층이 된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맞배지붕 양식이다. 전통 양식으로 건립되었지만, 주두(柱頭)나 첨차(檐遮)와 같은 공포의 구성이 없는 민도리 양식으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겹처마로 조성하면서 서까래에는 단청을 하여 사찰 건축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사방에 나 있는 창문은 전통 양식이 아니라 근대의 미닫이식 유리문으로 만들어져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쌍계사 청학루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쌍계사이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처음 승려가 되는 이의 수도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쌍계 팔경(八景)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하동 쌍계사 청학루는 처음 승려가 되는 이의 수도 장소로 사용된 곳으로, 이와 관련하여 백곡도인(白谷道人)의 「청학루 수행기문」이 있다. 또한 1902년(고종 39) 8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하동 쌍계사 청학루에 와서 지역의 선비들과 함께 시를 읊고 그 내용을 판각하여 걸어 놓았다. 최익현과 선비 31명, 그리고 주지 우룡 선사(雨龍禪師)를 포함한 33명의 시구가 들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보아 하동 쌍계사 청학루는 선사들의 수행 장소로서는 물론이요, 조선 시대 승려들과 유학자들의 한시를 통한 교류가 이루어진 장소로서의 의미도 아울러 갖고 있다. 이는 쌍계사가 불교를 배척하던 시기에 들어와서도 팔영루(八詠樓)와 더불어 지역 유림들과도 교류하는 유불 교섭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사상사적 의미가 크다.
이를 이어 1928년에도 우담 선사(遇潭禪師)를 중심으로 33명이 모여 시사(詩社)를 이루었고, 1961년에 들어와서도 하동 쌍계사 청학루에서 33명의 지역 시인들이 모여서 이를 계승하였다. 이런 점에서 하동 쌍계사 청학루는 팔영루와 더불어 승속(僧俗)이 교류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계승하였다는 또 다른 현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