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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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雙磎寺八詠樓 |
영어음역 | Paryeongnu |
영어의미역 | Paryeongnu Pavilion of Ssanggye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곽승훈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7월 20일 - 하동 쌍계사 팔영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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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쌍계사 팔영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건립 시기/일시 | 840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509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41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9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 7. 20.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성격 | 건축물 |
양식 | 맞배지붕|민도리 양식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쌍계사 |
관리자 | 쌍계사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은 것을 중창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개설]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때인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大悲和尙)과 삼법 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2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쌍계사 내에 있는 팔영루(八詠樓)는 진감 선사(眞鑑禪師)[774~850]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어산(魚山)」이란 불교 음악을 작곡한 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위치]
쌍계사 경내의 쌍계사 대웅전(雙磎寺大雄殿) 영역에 있다.
[변천]
하동 쌍계사 팔영루는 통일 신라 시대인 840년(문성왕 2) 진감 선사가 창건하였다. 고려 시대의 모습은 알기 어려운데, 1509년(중종 4) 중섬 선사가 하동 쌍계사 팔영루를 중수하고, 어득강(魚得江)에게 글을 부탁하니 서문과 팔영을 찬양하는 8수의 한시를 지어 놓았다. 휴정 선사(休靜禪師)가 쓴 「지리산쌍계사중창기(智異山雙磎寺重創記)」에서도 확인된다. 이때 중건된 하동 쌍계사 팔영루는 임진왜란으로 불탔고, 다시 중건되기 이전에 어득강의 외증손자인 하증(河憎)의 요청으로 성여신(成汝信)이 그 내용을 적어 놓았다. 또한 성여신은 그것을 기념하여 하동 쌍계사 팔영루에 대한 서문과 한시 8수를 새로 지었다.
이로부터 얼마 후 1641년(인조 19) 벽암 각성 선사(碧巖覺性禪師)에 의해 쌍계사가 중창될 때 쌍계사 대웅전과 함께 하동 쌍계사 팔영루가 새로 중건되었음이 백암성총(栢庵性聰)의 중수기에서 확인된다. 이양래(李亮來)가 1856년(철종 7)에 하동 쌍계사 팔영루에 대한 감회를 적고, 1861년(철종 12)에 또한 쌍계사 팔경을 지은 것으로 보아 그 즈음에 또 다른 중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에 들어와 1979년 승려 고산(杲山)이 새로 중수하였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이다. 부처나 보살을 봉안하지 않은 곳이어서 공포를 배치하지 않은 민도리 양식이다. 하지만 겹처마로 구성되었으며, 단청은 화려하다. 2층 건물로 경사면에 세워 아래의 우측 2칸은 막아 공간을 활용하고 있으나, 나머지 3면은 틔어 놓아 비어 있다. 2층의 문호는 문살이 없는 덧문을 더하여 바람을 막고자 한 것이 또 다른 특색이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쌍계사 팔영루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쌍계사이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인조 때 조성된 것을 1979년에 중수한 것이다. 1층에 벽을 설치한 공간 2칸은 매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하동 쌍계사 팔영루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진감선사가 처음 세운 뒤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 음악[범패]을 배출한 교육 장소로서 의미가 크다. 또 범패의 명인을 교육시켰던 교육장이었다고도 전한다. 나아가 지역의 선비들이 승려들의 요청으로 하동 쌍계사 팔영루를 찬탄하는 한시를 짓는 것 등으로 보아, 하동 쌍계사 팔영루는 청학루(靑鶴樓)와 함께 승속 교류의 장으로서 유불 교섭의 사상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