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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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斗芳齋 |
영어의미역 | Dubangjae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12월 20일 - 하동 두방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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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두방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건립 시기/일시 | 1777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25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1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 |
성격 | 사당 |
양식 | 팔작지붕 한옥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진양 강씨 문중 |
관리자 | 강신건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강민첨(姜民瞻)의 사당.
[개설]
하동 두방재(斗芳齋)는은열공(殷烈公) 강민첨[?~1021]을 모신 사당이자, 사당 영역 내의 한 건물인 강당의 명칭이다. 강민첨은 고려 목종 대에 급제한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현종 대에 동여진과 거란 등의 외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적을 세우고 상장군을 역임하였다. 이후 고려 문종 대에 공신각(功臣閣)에 강민첨의 초상이 올랐다.
[위치]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번지 우방산 중턱에 위치한다.
[변천]
하동 두방재가 세워진 때는 1777년(정조 1)이며, 이전에는 우방사(牛芳祠)에서 강민첨의 영정을 받들었다. 이후 하동 두방재는 1825년(순조 25)과 1901년(고종 38)에 중수되었으며, 그 사이 강민첨의 영정은 진주와 우방산으로 옮겨 모시기도 하였다.
[형태]
하동 두방재는 강민첨의 영정과 신위를 받드는 두방영당(斗芳影堂)과 내삼문(內三門), 강당인 두방재, 제물을 준비하던 전사청, 관리사, 출입문인 택류문(澤流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방영당에 봉안된 신위에는 ‘중시조 고 은열공부군 신위, 중시조 비 정경부인 신위(中始祖考殷烈公府君神位, 中始祖妣貞敬夫人神位)’라고 새겨져 있다. 1910년(순종 4) 후세들이 세운 신도비도 있다. 하동 두방재 입구에는 비각이 설치되어 있으며, 하동 두방재를 관리해 왔던 문중에서 찬조금을 낸 사람들의 기념비를 여러 개 세워 놓았다.
두방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들보는 5량이며 소로수장(小爐修粧) 집이다. 대청은 2칸으로 넓으며, 툇간과 툇마루도 넓고 개방적이다. 기둥은 높고 사용된 자재들이 견실하여 장중한 느낌을 준다. 하동 두방재가 위치한 두방산과 이전의 사우인 우방사(牛芳祠)가 있던 우방산은 조선 태종 때 사패지(賜牌地)로 받은 것으로, 강민첨 이후 묘소가 실전된 사람들을 위해 비와 제단이 마련되었으며, 말 등의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두방재는 진양 강씨(晉陽姜氏) 문중 소유로 강신건이 관리하고 있다.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하동 두방재에는 진양 강씨 은열공파 종중에서 음력 11월 12일 강민첨의 기일에 맞춰 제례를 올린다. 예전에는 밤에 지냈으나 진양 강씨 문중 후손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전 10시경에 지낸다.
[의의와 평가]
강민첨은 고려 시대 장군 강감찬(姜邯贊)[948~1031]과 함께 국난을 극복한 용장이다. 두방재는 강민첨의 유적지로서 후세들이 충효 사상을 본받을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