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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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泰龜 |
영어음역 | Jeong Taegu |
이칭/별칭 | 서문(瑞文),오헌(鰲軒)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현섭 |
출생 시기/일시 | 1703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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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40년 |
활동 시기/일시 | 1743년 |
몰년 시기/일시 | 1753년 1월 |
추모 시기/일시 | 1813년 |
추모 시기/일시 | 1885년 |
묘소|단소 |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진양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서문(瑞文), 호는 오헌(鰲軒). 아버지는 정국원(鄭國元)이고, 어머니는 권임형(權任亨)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부인은 유태영(柳泰泳)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정달진(鄭達晉)·정규진(鄭逵晉) 두 아들을 두었는데, 정달진은 효행으로 호조좌랑에 증직되고 정려가 섰다.
[활동 사항]
정태구(鄭泰龜)는 1703년(숙종 29) 4월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독실하여, 밖에 나갔다가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싸 가지고 돌아와서 부모님의 상에 올렸으며, 모든 일을 부모님께 여쭈고 행하였다. 병수발을 할 때에는 관대(冠帶)를 하고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탕제(湯劑)는 반드시 손수 달여서 올렸다.
1740년(영조 16)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매일같이 산소에 가서 곡을 하였는데,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혹시라도 이를 빠뜨린 적이 없었다. 꿇어앉아 절하던 자리가 깊게 홈이 파여 그 흔적이 남아 있고, 또 묘소 앞에는 마치 띠처럼 길이 생겨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정효자(鄭孝子) 길’이라고 불렀다. 1743년(영조 19)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상과 똑같이 예를 다하였다. 1753년(영조 29) 1월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13년(순조 13) 조봉대부 동몽교관에 추증되고, 1885년(고종 22)에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