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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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淑溥 |
영어음역 | Ha Sukbo |
이칭/별칭 | 경절공(敬節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병철 |
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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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6년 |
활동 시기/일시 | 1466년 |
활동 시기/일시 | 1467년 |
활동 시기/일시 | 1470년 |
활동 시기/일시 | 1471년 |
활동 시기/일시 | 1475년 |
활동 시기/일시 | 1478년 |
활동 시기/일시 | 1479년 |
활동 시기/일시 | 1484년 |
활동 시기/일시 | 1485년 |
활동 시기/일시 | 1486년 |
활동 시기/일시 | 1494년 |
몰년 시기/일시 | 1501년 |
추모 시기/일시 | 1501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
사당|배향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양 |
대표 관직 | 동지중추부사겸총관 |
[정의]
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할아버지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며, 아버지는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이다.
[활동 사항]
하숙보(河淑溥)는 1453년(단종 1) 무과에 급제하여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1456년(세조 2) 무과 중시에 합격하여 길주판관을 지냈다. 1466년(세조 12) 통정대부로서 강계부사에 제수되었다. 1467년(세조 13) 명나라가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원군을 요청하자 대장 강순(康純) 휘하의 비장으로 어유소(魚有沼)·남이(南怡) 등과 함께 출정하였다. 정건주위(征建州衛)의 논공행상 때 3등으로 노비 6구(口)를 하사받았다.
1470년(성종 1) 평안서도절도사, 1471년(성종 2)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되어 국방에 힘쓴 공로로 1475년(성종 6) 가정대부로 승진하였다. 이 해 다시 평안도절도사를 거쳐 이듬해 전라도절도사에 제수되어 남북으로 왜와 여진의 침입을 방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이 해에 변방 절도사 재직 시 여진에게 노략질당한 인명과 가축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숨겼다는 3사(三司)의 격렬한 탄핵을 받았다. 왕이 계속 그를 두둔하였지만 결국 아내의 고향인 초계(草溪)로 유배되었다가 양계에 충군(充軍)되었다.
1478년(성종 9) 형조참판, 1479년(성종 10) 충청도절도사, 1484년(성종 15) 한성부좌윤·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485년(성종 16) 전주부윤, 1486년(성종 17) 무신으로서 특진관에 발탁되었으며, 이어 첨지중추부사·영안북도절도사·동지중추부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494년(성종 25)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같은 해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다.
1497년(연산군 3) 노병(老病)을 이유로 사직소를 올렸으나 3공(三公)이 왕에게 만류하기를 권하였다. 왕이 본래 그가 어질다고 들었기 때문에 손수 비답을 내려 포상하기를 “특별히 하숙보에게 한 품계를 올려 청렴개결(淸廉介潔)의 기풍을 장려한다.” 하고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資憲大夫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府都摠管)으로 임명하였다. 얼마 안 있어 충청도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의 졸기에 의하면, 그는 성품이 청렴하고 근신(謹愼)하여 관직에 임해 치밀했으며, 함부로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501년(연산군 7) 사망하자 나라에서 경절(敬節)이란 시호를 내렸다. 일찍 일어나서 일을 공경하는 것[夙興恭事]이 경(敬)이요, 염치를 좋아하여 스스로 제절하는 것[好廉自克]이 절(節)이다.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경현사(景賢祠)에 제향되었다. 경현사에는 그의 할아버지 하경복과 그 아우 하경리(河慶履), 그리고 아버지 하한이 함께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