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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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壽正 孝行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bak Sujeong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144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용규 |
건립 시기/일시 |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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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1448 |
성격 | 효행비 |
관련 인물 | 박수정(朴壽正)|김황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25㎝[높이]|40㎝[너비]|15㎝[두께]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효자 박수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박수정(朴壽正)은 본관이 면천(沔川)이고, 자는 경현(敬賢)이며 문온공(文溫公) 박여룡(朴汝龍)의 후손이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시묘를 하였는데, 아들에게 매월 쌀 한 되와 소금 한 홉을 가져오게 하여 이것으로 생식을 하며 지냈다. 시묘를 마칠 무렵 아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아무 날 아무 시에 집으로 돌아갈 터인즉, 중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정갈스럽게 마련하여 동네 밖 아무 데까지 나오너라”고 하였다.
박수정이 아들이 준비한 돼지를 받아 바위 뒤로 슬쩍 넘기자 호랑이가 쏜살같이 받아 물고 순식간에 온데간데 없었다. 그 호랑이는 시묘 중에 박수정을 보호한 호랑이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다.
[건립 경위]
박수정은 시묘 이후에도 묘소를 떠나지 못하다가, 자녀들의 만류를 이기지 못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매월 세 차례 덥고 추운 날을 피하지 않고 늙도록 성묘를 하자 고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고, 하동향교와 고을 선비들이 이 사실을 서로 글을 내어 널리 전하여 알렸다. 이 사실이 성균관에까지 알려져 효자를 칭송하는 상을 내리고 효자비를 세울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비를 건립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여 미루어 오다 1974년 비로소 비를 세웠다.
[위치]
박수정 효행비(朴壽正孝行碑)는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1448번지 청학동 도인촌 아래 약 2㎞ 지점의 학동마을 어귀 도로변에 있다. 묵계초등학교에서 약 2.5㎞의 거리이다.
[형태]
비석의 몸돌은 규형(圭形)으로 화강암이다. 팔자형의 비석 덮개가 있으며, 받침돌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25㎝, 너비 40㎝, 두께 15㎝이다.
[금석문]
비의 정면에는 ‘효자 면천박공 행적비(孝子沔川朴公行蹟碑)’라 되어 있다. 비문은 비가 건립되기 14년 전 경상북도 의성군 사람으로 이름 난 유학자인 김황이 지었다.
[의의와 평가]
박수정의 효행은 효자를 보호한 호랑이의 전설과 함께 뭇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길이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