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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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川里上城迎日鄭氏集姓村 |
영어의미역 | Single-Clan Village of Yeongil Jeong Clan in Sangseong, Seongcheon-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가 |
재실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영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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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집성촌|동성 마을 |
면적 | 1.21㎢ |
가구수 | 23가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영일 정씨 집성촌.
[명칭 유래]
상성은 성천리에서 가장 윗동네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성천리는 본디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외부로 통하는 여섯 개의 고개가 있어, 고개 안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재내[峙內] 또는 잔내라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할 때 행정 공무원이 재내에 해당하는 한자를 고른 끝에 ‘재 성(城)’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 뒷산 정안봉[448m]에 고려 때 쌓은 정안봉 산성이 있고 하천이 시작 되는 곳이므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숙종 때 수문장 정시규의 증손 정국보(鄭國寶)가 진주에서 옮겨 와 터를 잡은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자연 환경]
정안봉 줄기가 남쪽을 향해 동서로 뻗어 내린 가운데 자리 잡은 마을로 소쿠리 안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양지 바른 곳이다. 정안봉은 고려 때 참지정사를 지낸 정안(鄭晏)이 별장을 짓고 어머니를 봉양하였다는 전설이 서린 산으로 정안이 쌓았다는 정안봉 산성이 둘러 있는데, 산성 안에는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이 발견된다. 예부터 마을 가운데 깨끗한 우물이 있고 산 밑은 여러 곳의 하천 발원지가 있어 물이 넉넉하여 농사짓기가 편했고 사방에 산이 많아 땔감 구하기가 쉬웠다.
[현황]
성천리 상성은 2010년 12월 현재 면적은 1.21㎢이며 총 30가구에 61명[남자 30명, 여자 3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영일 정씨는 23가구이며 그 밖에 창녕 조씨 2가구, 남평 문씨 5가구가 거주한다.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오지 마을이었으나 최근 마을 앞으로 포장도로가 놓이고 하사 지구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수로가 마을 농경지를 관통함으로써 천수답이 수리 안전답으로 개선되어 농업 기반이 향상되는 등 주거 환경이 매우 좋아졌다. 관련 유적으로 입향조 정국보와 그의 증조부 정시규의 묘, 재실인 영천재(永川齋)[1942년 건립]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