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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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龍里中村載寧李氏集姓村 |
영어의미역 | Single-Clan Village of Jaeryeong Yi Clan in Jungchon, Cheongnyong-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가 |
개설 시기/일시 | 1488-154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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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경모재(1) |
성격 | 집성촌|동성 마을 |
면적 | 1.69㎢ |
가구수 | 35가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재령 이씨 집성촌.
[명칭 유래]
청룡리의 중심 마을이므로 중촌이라 하였고, 산등성이인 청룡등(靑龍嶝) 안에 터를 잡았으므로 청룡안 또는 청양(靑陽)이라고도 하였다. 청룡리에는 구름몰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훗날 한자로 지명을 고칠 때 운곡(雲谷)이라 하였고, 조선 시대 마을 가운데로 굴천(堀川)이 흘러 굴촌이라고도 하였다. 또 구름을 타고 용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어 용동(龍洞)이라 불렀다. 청룡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청양의 ‘청’자와 용동의 ‘용’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고려 말 나라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숨어 버린 72현의 한 사람인 재령 이씨 이오(李午)가 함안에 은거한 뒤, 조선 중종 때 군자감주부를 지낸 이오의 증손 이종(李琮)이 중촌으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재령 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자연 환경]
지리산 줄기가 옥종면으로 뻗어 오대산을 이룬 뒤 동남쪽으로 용처럼 구불구불 내려와 멈춘 곳에 터를 잡은 마을이다. 생활환경이 편리하고 사방으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현황]
재령 이씨 집성촌이 있는 중촌은 청룡리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12월 현재 면적은 1.69㎢이며 총 65가구에 145명[남자 79명, 여자 6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재령 이씨는 35가구이며 양씨, 정씨, 하씨, 최씨, 김씨, 박씨 등 재령 이씨와 인척 관계인 각성바지가 거주한다.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청룡리 중촌은 한때 120여 가구가 사는 큰 마을이었으나 급격한 이농 현상으로 인구가 줄었고 핵가족 풍조에 따라 현재는 1인 단독 가구가 많다.
마을 앞에 있는 하동 청룡리 은행나무는 수령 천 년이 넘는 보호수로 해마다 마을 사람들이 치성을 올린다. 임진왜란 때 임산부가 왜적을 피해 비어 있는 나무 둥치 속에 숨어서 아이를 낳았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관련 유적으로 이종을 추모하고자 세운 경모재(景茅齋)가 있고, 이종의 장남 이희만(李希萬)이 살았던 집터는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 길에 올랐던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거처하며 군사 조련을 시킨 곳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