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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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大興寺千佛殿 |
영어공식명칭 | Haenam Daehungsa Chonbuljon Hall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호균 |
건립 시기/일시 | 1813년 - 해남 대흥사 천불전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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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11년 - 해남 대흥사 천불전 화재로 소실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8월 5일 - 해남 대흥사 천불전 보물 제180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해남 대흥사 천불전 보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해남 대흥사 천불전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
성격 | 불전 |
양식 |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대흥사 |
관리자 | 대흥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개설]
해남 대흥사 천불전(海南大興寺千佛殿)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천불을 모신 전각이다.
[위치]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흥사의 경내 대웅전을 기준으로 남원(南院)의 중심에 있다.
[변천]
1823년 『대둔사지(大芚寺誌)』에 의하면 조선 시대 1811년(순조 11)에 가허루(駕虛樓)에서 난 불로 남원 일대가 불탔으나 2년 뒤인 1813년에 초의선사의 스승인 완호(玩虎) 대사와 제성(濟醒) 대사에 의하여 천불전이 중건되었다고 한다. 1639년 『죽미기(竹迷記)』에 의하면 남원의 주전각은 극락전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극락전 자리에 천불전을 중창한 것으로 여겨진다. 천불전 안에 천불상을 모시기 위해 천불전 중건의 주역이었던 완호(玩虎) 대사의 제자 풍계(楓溪) 대사 등이 경주 지역의 불석산 옥돌로 천불상을 만들었다. 경주에서 해남 대흥사로 천불상을 옮기기 위해 1817년 11월 25일 2척의 배에 실었으나 1척이 풍랑으로 표류해 일본으로 갔다가 돌아와 1818년 8월 15일 천불전에 추가로 봉안되었다. 전라남도 화순 쌍봉사(雙峰寺)의 화원승(畵員僧)으로 해남 대흥사 천불전의 천불 조성을 담당하였던 풍계현정(楓溪賢正)이 기록한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1821]에 자세히 경위가 기록되어 있어 천불전의 중건과 천불 조성 및 봉안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일본에 표류한 천불상은 다른 천불상과 구별하기 위해 다산 정약용의 권유로 ‘일본’을 뜻하는 ‘일(日)’ 글자를 붉은 글씨로 왼쪽 등과 어깨 사이에 표시하였다. 이때의 불사를 기념해 초의 의순이 「천불전상량문」·「중조성천불기」, 범해 각안이 「천불조성약기」를 지었다.
[형태]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대흥사 남원(南院)의 중심 불전이다. 단층 5칸 맞배집인 대문체 성격의 가허루의 중앙 문간을 지나면 천불전 안마당이 보이고 정면의 높은 장대석 축단 위에 서향한 천불전이 자리한다. 왼쪽에는 봉향각이, 오른쪽에는 옛 강원이던 용화당이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형으로 둘러싸고 있어 아담한 독립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높이 쌓은 석축단(石築壇) 위에 있는 천불전(千佛殿)은 낮은 기단(基壇)에 세운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다포계(多包系)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자연석(自然石) 기초(基礎) 위에 일부 괴목(槐木)으로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견고하게 보이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놓고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의 다포작(多包作)을 꾸몄다. 살미첨차[山彌檐遮]의 끝은 연꽃봉오리의 앙서[仰舌]로 되어 있다. 어간(御間) 정면 기둥머리에는 용두조각이 끼워져 있다. 대들보를 앞뒤 평주(平柱) 위에 걸고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걸었다. 좌우 측면 어간 기둥의 대들보에 용머리로 장식된 충량(衝樑)을 걸었다. 천장은 우물천장과 빗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물천장의 반자 중에는 범어(梵語)가 쓰인 것도 있다. 정면에는 3칸 모두 빗꽃살과 소슬빗꽃살창문을 달고, 왼쪽 측면에는 외짝문을 달았으며, 이외의 나머지 면은 모두 벽체로 마무리하였다. 벽체는 인방재로 상하를 나누었다. 상부에는 내외부 모두 각기 다른 벽화가 그려져 있고 하부는 세로로 세운 판재로 마감하였다. 건물 앞면에는 궁창판에 안상(眼象)을 하였고 정교한 국화무늬[菊花紋]·연화무늬[蓮華紋]의 꽃살 분합문(分閤門)을 달았는데 중앙 칸은 3짝, 좌우협간(左右夾間)은 2짝이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평면 비례와 공포 배치·상부 가구 등에서 천불상을 봉안하기 위한 용도에 따른 특별한 설계에 의해 건립되었다. 공포의 구성과 세부적 조각 수법, 빗천장과 우물천장의 장식과 구성, 창호 등은 화려하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구조 또한 튼튼하다. 천불전의 건축형식과 세부적 수법은 전라남도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인 해남 미황사 대웅전[1754], 불갑사 대웅전[1764], 불회사 대웅전[1808] 등과 유사한 수법을 보인다. 조선 중기 이후 성행한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로서 짜임새가 매우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내부 불단에는 삼존상을 중심으로 뒤쪽으로 천 개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 목조여래좌상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목조보살좌상을 협시로 두었다. 뒤쪽으로 옥석(玉石)으로 조각한 천 개의 작은 불상[1817]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높게 비스듬히 배열(配列)하였다.1794년(정조 18) 사천왕도를 봉안하고, 1819년(순조 19)에 신중도를 조성하여 봉안하였으나 현재는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필체이다. 정면의 계단 좌우에는 괘불지주가 세워져 있다.
천불전 앞마당에는 초의선사가 직접 심었다는 영산홍과 자산홍이 자란다.
[현황]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건물 전체의 보존상태가 완전하며 지금도 종교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2013년 8월 5일 보물 제180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돕고 감시 장치[CCTV]를 설치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관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이다.
[의의와 평가]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현재까지 남아 전하는 김천 직지사[비로전]·구례 화엄사·강화 보문사의 천불전 가운데 우리나라 천불전을 대표할 수 있는 건물로서 역사적·학술적인 가치가 크다. 아울러 『일본표해록』 등을 통해 건물의 중건과 천불상 조성 및 봉안의 내력에 대한 같은 시대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