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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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 |
영어공식명칭 | Haenamyunssi Gajeon Gohwacheom iIgwa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0[연동리 10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제작 시기/일시 | 1719년 -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 『가전보회』, 『윤씨가보』화첩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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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68년 12월 19일 -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 보물 제48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 보물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0[연동리 102-1] |
원소재지 | 녹우당 종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연동리 82] |
성격 | 고화첩 |
작가 | 윤두서 |
소유자 | 윤형식 |
관리자 |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가 공재 윤두서의 서화첩.
[개설]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은 윤두서의 아들 낙서 윤덕희(尹德熙)가 윤두서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인 1719년 『가전보회』, 『윤씨가보』 2권의 화첩으로 만든 것과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일본여도(日本輿圖)』를 일괄로 묶은 것으로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사실주의와 풍속화, 진경산수화를 통해 선구적인 세계를 추구한 윤두서의 화풍은 아들 윤덕희와 손자인 청고 윤용(尹愹)에게로 이어졌다.
[형태 및 구성]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은 ‘윤씨가보, 보물 제481-1’이라 쓰인 것과 ‘가전보회, 보물 481-2’라 쓰인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동국여지지도, 보물481-3’과 ‘일본여도, 보물481-4’도 화첩 속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일괄로 구성되어 있다. 『윤씨가보』에는 윤두서의 그림 44폭과 윤두서의 글씨 4폭이 실려 있다.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은 남종산수화, 말 그림, 도석인물화, 풍속화, 정물화 등 윤두서의 선구적인 회화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가전보회』에는 윤두서의 부채 그림 22폭, 액자 글씨 2폭,옥동 이서가 1715년 4월에 쓴 초서 한 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징]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에 나오는 공재 윤두서의 유작들 가운데 「선차도」, 「돌깨기」, 「채애도(採艾圖)」 등 풍속화는 김홍도(金弘道), 신윤복(申潤福)에 의해 발전되어 18세기 풍속화를 주도하였다. 또한 윤두서의 실학적 학문에 대한 취향은 『동국여지도』나 『일본여도』에도 나타나며,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서적 그리고 이잠(李潛), 이서(李漵) 등 이익(李瀷) 형제들과의 교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윤두서의 회화는 18세기 중·후반 이후의 화단을 풍미한 남종화풍의 선구적 위치에 있기도 하다. 윤두서는 관념적인 산수화를 탈피해 「백포별서도(白浦別墅圖)」와 같은 진경산수도를 남기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은 조선 후기 사실주의, 풍속화, 진경산수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 회화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던 윤두서의 회화 세계를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윤두서의 작품을 오늘날까지 온전히 보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본수묵(紙本水墨) 혹은 담채한 소품들을 어떤 체계 없이 집성한 것으로 크기나 소재, 기법이 다양하여 공재 윤두서 회화의 진수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