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236 |
---|---|
한자 | 鐵器 時代 |
영어공식명칭 | Iron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박현열 |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철기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 구분의 명칭으로서 철기 시대는 인류가 철을 이용하여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를 말한다. 이러한 철기 시대는 톰센에 의해 선사 시대를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으로 나누는 삼 시대법이 완성되면서 만들어졌다. 한국의 철기는 중국 전국 시대 철기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초기에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조 쇠도끼를 비롯한 농구류·공구류가 많이 만들어졌다.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 시기는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인다. 철기 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 기술의 발전은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이 가속화되어 최초의 국가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경상남도 함안군이 속한 지역은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남부 지역 철기 문화의 형성 과정은 전 지역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고 보기보다는 최소한 두 계열에 의해 유입된 문화를 수용하였으며, 그 과정 속에서 남부 지역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즉 움무덤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는 대동강 유역으로부터 육로를 이용하여 낙동강 유역으로 파급된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이것은 움무덤에서 철기와 함께 중국의 전한(前漢) 대에 제작된 청동 거울 등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개더미 및 옹관묘[독무덤]의 문화는 해로를 통해 서해안과 남해안을 거쳐 동남부 지역으로 파급된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조개더미에서 중국의 화폐와 점치는 뼈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남부 지방 철기 문화의 초기 단계에서의 성격 문제는 낙랑의 등장과 관련시키는 것이 통설이나, 오히려 그보다는 이전의 위만 조선(衛滿朝鮮)의 건국을 전후하는 시기에 한반도에 들어온 철기 문화의 여파가 남부 지역까지 도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남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초기의 철기로 주조 쇠도끼 등이 있는데, 이들은 낙랑과 직접 관련되는 유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철기 문화의 형성이 대륙으로부터 유입된 철기 문화가 주류를 이루면서 남부 지역의 철기 문화를 형성하였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에서 벗어나 남부 지역의 철기 문화가 밖으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문화와 기존의 토착 문화가 융합되어 새롭게 생성되었다는 관점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고고학적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즉 철기가 유입되는 시기에도 여전히 석기나 청동기가 사용되었다는 점, 청동기가 소멸한 이후에도 민무늬 토기 계열인 경질 민무늬 토기와 적갈색 연질 토기가 계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과, 특히 철기 중에서 초기에는 청동기를 모방한 유물이 많다는 점 등이다. 다만 철기의 제작 기술이 외부로부터 유입되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남부 지역의 철기 문화는 외래적인 문화 요소가 많다고 하더라도 토착적인 청동기 문화에 이어 변화·발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안야국과 칠포국의 성장]
철기 시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 시기 한반도 남부 지역에 삼한이 자리하고 있었다. 삼한은 마한과 진한, 변한을 말하는데 함안군이 속한 지역은 변한에 해당한다. 3세기 말 중국의 진수에 의해 편찬된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을 보면, 한반도 남부 지방에는 마한 54개국과 진한 12개국, 변한 12개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 변한의 한 나라인 안야국(安邪國)이 오늘날의 함안군에 해당한다.
안야국의 형성 시기를 두고 여러 설들이 있지만 안야국의 형성은 기원을 전후한 시기 또는 늦어도 기원후 1세기 대를 넘지 않을 것이다. 추후 발굴 조사를 통해 더 이른 시기의 뚜렷한 유적이 확인된다면 더 이른 시기에 안야국이 형성되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남아 있다. 안야국 이외에도 함안군 관내인 칠원읍 지역에는 칠포국(漆浦國)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야국과 칠포국은 모두 하천의 중류·상류 지점에 살고 있던 청동기인들과 직간접적 교류를 통해 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철기의 보급과 함께 사회 통합을 이루어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철기 시대의 유적·유물]
안야국은 함안천 중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이는 현재의 함안군 가야읍 일대로 추정된다. 칠포국 역시 광려천 중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뚜렷한 삼한 시대 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청동기 시대 및 삼국 시대 유적이 밀집한 함안군 가야읍 오곡리, 용산리, 용정리, 예곡리 일대가 아닌가 한다.
함안군 가야읍 일대의 대표적인 삼한 시대 유적은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末伊山古墳群)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국립 창원 문화재 연구소[현 가야 문화재 연구소]와 경남 고고학 연구소[현 삼강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한 유적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는 널무덤[목관묘] 33기과 옹관묘 2기, 덧널무덤[목곽묘] 9기가 확인되었다. 널무덤의 규모는 길이 250~290㎝ 정도이며 평면 형태는 긴 타원형이다. 유물은 쇠뿔 손잡이 항아리와 주머니 항아리, 쇠도끼 등 기원후 1~2세기 대가 중심이다.
최근 군부대 이전과 관련한 발굴 조사에서 12기의 널무덤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그동안 삼한 시대 유적이 전무하였던 함안군 군북면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유적으로 군북면 소포리 일대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널무덤 12기와 주머니 항아리, 쇠뿔 손잡이 항아리, 쇠도끼, 쇠창 등이 출토되었다. 중심이 되는 시기는 역시 기원후 1~2세기 대이다. 이외에도 지표 조사를 통해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유적군과 부봉리 유적군(釜峰里遺蹟群), 대산면 서촌리 등지에서 삼한 시대의 생활용 토기가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