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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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漆原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칠북면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성우 |
[정의]
고려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과 칠북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칠원현(漆原縣)은 고려 시대의 행정 명칭으로 통일 신라 시대의 칠제현(漆隄縣)이 개칭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물계자전에는 칠포국(柒浦國)으로 나타나는데, 포상팔국(浦上八國) 중의 하나이었다. 남산 신성 비문(南山新城碑文)에는 칠토군(柒吐郡)으로 나온다.
[제정 경위 및 목적]
940년(태조 23) 칠원현이 되었다. 조선 시대 현감이 파견된 이유는 칠원 지역이 고대로부터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칠포국이 위치한 낙동강에 접하여 교통상의 요지이었기 때문이다. 구산현이 칠원현의 속현이었던 것은 칠원 지역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 제34 지리1 양주(良州) 의안군(義安郡) 조에 "의안군은 본래 굴자군(屈自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영현이 셋이었다. 칠제현은 본래 칠토현(漆吐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칠원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2권 칠원현 건치 연혁(建置沿革) 조에는 "본래 신라칠토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칠제(漆隄)라 고쳐서 의안군 속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의 명칭[원(原)이 한자 표기가 원(圓)으로 된 곳도 있다]으로 고쳤고, 현종이 김해부(金海府)에 예속시켰으며, 공양왕이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본조에서는 현감으로 고쳤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칠원현은 고려 시대의 행정 명칭으로 통일 신라 시대의 칠제현이 개칭된 것이다. 1907년(순종 1) 행정 구역을 통·폐합할 때 함안에 합쳐졌다. 옛 칠원현의 흔적은 1760년(영조 36) 자리잡은 칠원 향교와 칠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삼한 시대 변진 접도국(弁辰接塗國)·변진 주조마국(弁辰走漕馬國)이라 비정되기도 하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 흠명기(欽明紀)에 나오는 가야 지역 요충지인 구례산수(久禮山戍)·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변천]
칠토현이 경덕왕 대인 757년 의안군 영현 칠제현으로 바뀌었다. 고려 시대에는 칠원현이 되어 김해부에 소속되었고, 1907년 행정 구역이 통·폐합될 때 함안에 합쳐졌다.
[의의와 평가]
칠원은 고대 칠포국이 위치한 지역이며, 낙동강에 접하여 교통상의 중요 지역이었기 때문에 독자적 행정 구역인 칠원현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