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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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平 李氏 |
이칭/별칭 | 성산 이씨,성산·광평 이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류진희 |
[정의]
이무재를 시조로 하고 이호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이무재(李茂材)를 시조로 하는 광평 이씨(廣平李氏)는 조선 전기에 정무공(靖無公)이호성(李好誠)[1397∼1467]이 함안으로 이거한 후 함안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발전한 성씨이다. 이를 '성산 이씨(星山李氏)', '성산·광평 이씨(星山·廣平李氏)' 라고도 한다.
[연원]
고려 말 사재 동정(司宰同正)을 지낸 이무재를 시조로 한다. 그 증손 이능(李能)이 광평군(廣平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성산(星山) 또는 광평(廣平)으로 하였다. 이전부터 성주(星州) 지역에 세거했던 여섯 이씨(李氏)들이 조선정조 이전까지는 다 같이 본관을 성산 또는 성주로 사용하였다. 그 후 각각 시조별로 성주, 광평, 성산, 경산(京山), 벽진(碧珍), 가리(加利) 등 본관을 달리 칭하고 있다. 이무재를 시조로 하는 이씨들은 오늘날 대체로 성산·광평 이씨로 일컫고 있다.
[입향 경위]
정무공 이호성의 할아버지 이해(李晐)가 성산에서 처가가 있던 금산(金山)[지금의 김천(金泉)]으로 이주하였다. 그후에 이호성이 단종 폐위 때 처가인 함안의 하리(下里)동지산(冬只山)으로 내려와 우거(寓居)한 것이 함안의 첫 입향(入鄕)이다. 이호성은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금산으로 환향(還鄕)하였지만 자손들은 그대로 함안·의령 등지에 머물러 세거해 오고 있다.
[현황]
오늘날 함안에 살고 있는 광평 이씨는 이호성의 셋째 아들 이거인(李居仁)과 넷째 아들 이처인(李處仁)의 후손이다. 첫째 아들 이존인(李存仁)과 둘째 아들 이의인(李依仁)은 각기 그 아들 이윤창(李允昌)과 이희조(李希祖) 대에서 자손이 없게 되었다. 셋째 아들 이거인은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세 번 절도사(節度使)를 지냈다. 이처인 역시 1460년(세종 6)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奉事)를 지냈다. 높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거문고와 글로써 즐거움을 삼았다. 흉년이 들었을 때 아홉 고을의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이처인이 처가인 단성(丹城)으로 이거하였으나, 그의 둘째 아들 현감공 이순조(李順祖)가 다시 함안 검암(儉巖)으로 돌아왔다.
이순조 역시 성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네 고을의 원을 지냈는데, 청백(淸白)하여 떠난 후 모두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 이후로 이순조 자손들이 가장 번성하였는데, 그 손자 황곡(篁谷)이칭(李偁)[1535~1600]은 퇴계(退溪)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공부하여 실천이 독실하였다. 만년에 현감에 임명되었다가 지평을 지냈다. 문집이 있으며 도림 서원(道林書院)에 향사되었다.
황곡의 둘째 아우 충순당(忠順堂)이령(李伶)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김해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조정에서 정려를 내리고 이조 참의에 추증하였다. 황곡의 맏아들 매죽헌(梅竹軒)이명호(李明怘)는 아버지를 이어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이 높아 여양 서원(廬陽書院)에 배향되었다. 바로 밑 아우 이명신(李明新+心)은 등과(登科)한 후 정유재란 때 웅천 현감으로 부임하여 왜적을 물리쳐 공을 세웠다. 또한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하여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경현사(景賢祠)에 배향되었다. 다섯째 막내 아우 죽와(竹窩)이명여(李明悆)는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학문이 정밀하고 독실하였다. 임진왜란 때 망우당(忘憂堂)곽재우(郭再祐)[1552~1617]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화왕산 동고록(火旺山同苦錄)』이 있다.
황곡의 바로 아래 아우 검계(儉溪)이길(李佶)의 아들 정재(正齋)이명서(李明恕)는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오늘날 함안에는 가야읍 검암리, 함안면 파수리와 대산리 동지산 마을, 산인면 송정리와 신산리 신당 마을 등에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동산정(東山亭)은 정무공이호성의 손자 이희조가 할아버지 이호성의 덕업을 기리기 위해 1497년(연산군 3)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건립한 정자이다. 황곡 서원(篁谷書院)은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으며, 여기에 이능·이호성·이칭·이명호·이명신 등의 인물을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