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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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巖 書院 |
영어공식명칭 | Doam Private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 46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은영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에 있었던 서원.
[개설]
도암 서원(道巖書院)은 배여경(裵汝慶)[1622~1696], 조영득(趙靈得)[1666~1736], 조익성(趙益誠), 황후간(黃後幹)[1700~1773] 등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배여경의 자(字)는 선여(善餘)이고, 호(號)는 일성재(一誠齋)이다. 배여경은 성품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부모상뿐 아니라 국상에도 친히 3년의 심상(心喪)을 가졌다. 이 일로 숙종(肅宗) 때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배수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사림에서 도암 서원에 배향하였다.
조영득의 자(字)는 희숙(喜叔)이고, 호(號)는 요계(樂溪)이다. 도곡공(道谷公)익도(益道)의 증손자이다. 아버지는 박(璞)이며, 어머니는 상산 김씨(商山金氏)였다. 부모의 극진히 봉양하였고, 상중의 시묘(侍墓)에도 효도를 다했다. 일찍 사별했던 누나와 생질들을 십 수년 동안 양육하고 출가시켰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행하며 가산이 곤경에 빠질 정도였다.
조익성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백의종군하였다. 영남 안무사(嶺南按撫使) 박사수(朴師洙)의 종사관(從事官)이었던 강규환(姜奎煥)은 “변란 중에 어찌 충신이 없다 하리, 남창의 덕망 높은 그 사람들이네. 단검으로 종군하는 날을 기금 보니, 대소헌 선생에게도 후손이 있었네.”라고 시를 증정하였다. 황후간은 자는 이직(而直)이고, 호는 이봉(夷峰)·이산(夷山)이다. 저서로는 『이봉 문집(夷峰文集)』이 있다.
[설립 목적]
도암 서원은 배여경, 조영득, 조익성, 황후간 등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변천]
도암 서원은 1679년(숙종 5)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면서 훼철되었다. 이후 1940년 겨울에 후손들이 도암 서원 일부를 복원하여 당(堂)을 세우고 도암 서당이라 현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암 서당의 사정을 전하는 「도암 서당기(道巖書堂記)」의 기문은 1941년에 송준필(宋浚弼)이 지었다.
[현황]
도암 서원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 대암 마을에서 군북 농공 단지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당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현재 향사(享祀)는 하지 않으며, 분성 배씨(盆城裵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