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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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院 |
영어공식명칭 |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해 설치한 조선 시대 사립 교육 기관.
[개설]
서원(書院)은 조선 시대 지방 유림에 의해 설립되어 학문 연구와 선현봉사(先賢奉祀) 및 향촌 자치 기구의 역할을 담당한 사설 중등 유교 교육 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원의 시작은 1543년(중종 38)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면서부터이다.
서원의 건립은 본래 향촌 유림들에 의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었으나, 서원이 지닌 교육 및 향사적(享祀的) 기능이 국가의 인재 양성과 교화 정책에 깊이 연관됨으로 인해 조정에서 특별히 서원의 명칭을 부여한 현판과 그에 따른 서적·노비 등을 내린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특전을 부여받은 국가 공인의 서원을 사액 서원(賜額書院)이라 하여 비사액 서원과는 격을 달리하였다. 1550년(명종 5) 풍기 군수 이황(李滉)의 요청으로 명종(明宗)이 백운동 서원에 대하여 ‘소수 서원(紹修書院)’이라는 어필(御筆) 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노비를 부여하여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그 뒤 전국에 서원이 세워지면서 사액을 요구하여 숙종(肅宗) 때에는 무려 131개소의 사액 서원이 있었다. 그 뒤 영조(英祖) 때에는 서원 폐단의 격화로 인한 강력한 단속으로 사액은 일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현황]
조선 시대 서원이 처음 건립된 1543년(중종 38)부터 1876년(고종 13) 개항 이전까지 경상남도 함안군에는 사액 서원 2곳과 미사액 서원 15곳 등 모두 17곳이 건립되었다. 17곳 가운데 사액 서원은 덕연 서원(德淵書院)과 서산서원(西山書院) 이다. 미사액 서원은 기양 서원(沂陽書院), 덕암 서원(德巖書院), 도계 서원(道溪書院), 도남 서원(道南書院), 도림 서원(道林書院), 도암 서원(道巖書院), 두릉 서원(杜陵書院), 상봉 서원(祥鳳書院), 송정 서원(松亭書院), 신암 서원(新巖書院), 여양 서원(廬陽書院), 운구 서원(雲衢書院), 청계 서원(淸溪書院), 평천 서원(平川書院), 홍포 서원(鴻浦書院)이었다.
사액 서원인 덕연 서원과 서산 서원은 모두 숙종 때 사액 서원이 되었다. 덕연 서원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정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세붕의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이었다. 서산 서원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려(趙旅)·원호(元昊)·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 등 여섯 사람의 제향을 위하여 창건한 서원이었다. 함안 내 사액 서원이었던 이들 2곳은 19세기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혁파되었다가 광복 후 모두 복원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개별 서원 항목들을 참조하기 바라며, 나머지 미사액 서원 15곳의 주된 상황은 다음과 같다.
기양 서원은 주세곤(周世鵾)·주선원(周善元)·주각(周珏)·주재성(周宰成)·주도복(周道復)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때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창건된 서원이며, 고종 때 훼철되었다가 충효사(忠孝祠)는 광복 후 중건되었다. 덕암 서원은 조순(趙純)·박한주(朴漢柱)·조종도(趙宗道)의 학행을 추모하여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광해군(光海君) 때 설립되었다. 고종 때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도계 서원은 이숙(李潚)·이휴복(李休復)·박진영(朴震英)·조익도(趙益道)의 행적을 추모하여 정조(正祖) 때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원촌동에 창건되었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혁파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도남 서원은 조방(趙垹)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철종(哲宗) 때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에 창건한 서원이다. 고종 때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광복 후 복원되었다. 도림 서원은 정구(鄭逑)의 행적을 추모하여 숙종 때 함안면 대산리에 창건되었다. 고종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도암 서원은 배여경(裵汝慶)·조영득(趙靈得)·조익성(趙益誠)·황후간(黃後幹)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에 창건되었다. 고종 때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된 후 1940년 도암 서당으로 복구되었다.
두릉 서원은 안덕의 행적을 추모하여 순조 때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 창건되었다. 고종 때 서원 훼철령으로 혁파된 후 1930년 서당으로 중건되었다. 상봉 서원은 황협·황열 등을 추향하기 위하여 숙종 때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설립한 서원이다. 고종 때 서원 철폐령으로 혁파된 후 서당으로 중건하였다가 광복 후 서원으로 중건하였다. 송정 서원은 조임도(趙任道)의 행적을 추모하여 경종(景宗) 때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에 건립된 서원이다. 고종 때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신암 서원은 안관(安灌)의 행적을 추모하여 정조 때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건립된 서원이다. 고종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광복 후 복원되었다. 여양 서원은 숙종 때 이경번·이경무를 향사하는 여양사(廬陽祠)로 창건된 후 정조 때 서원으로 승격되어 안택(安宅)을 함께 향사하였다.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종 때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운구 서원은 이오(李午)의 행적을 추모하여 정조 때 함안군 가야읍 설곡리에 창건된 후 고종 때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청계 서원은 이삼로(李三老)·이시분(李時馩)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현종 때 함안군 칠서면 청계리에 설립되었다. 고종 때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된 후 광복 후 복원되었다. 평천 서원은 숙종 때 창건된 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현재는 재(齋)만 남아 있다.
홍포 서원은 충효공(忠孝公)윤환(尹桓)·정평공(靖平公)윤자당(尹子當)·양성당(養性堂)윤지(尹志)·지퇴당(止退堂)윤석보(尹碩輔)·헌민공(憲敏公)윤탁연(尹卓然)의 행적을 추모하여 정조 때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창설한 서원이다.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혁파된 후 광복 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