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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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洞祭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Tutelary Festival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집필자 | 황은실 |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에게 마을 공동으로 올리는 의례.
[개설]
동제(洞祭)는 마을을 수호해 주는 상징으로서 동신(洞神)을 정하고 일정한 시간과 절차를 통해 주민의 평안과 풍요 등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이다. 동제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의 문헌 기록을 통해 삼한(三韓)의 제천 행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제천 행사는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삼한의 5월제, 10월제 등이 있으며, 주로 농경 지역에서 행해진 의식으로 씨를 뿌린 뒤에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고, 곡식을 거둔 뒤에 감사의 의미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고대 부족 국가에서 행해졌던 제의는 사회가 세분화되면서 마을 단위의 동제로 토착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제는 마을 수호신을 모신 마을 제당에서 제액 초복(際厄超福)을 위해 해마다 마을 공동체 단위의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을 제당은 당산, 동신당, 동제당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여기서 올리는 제의는 동제, 동신제, 동고사 등으로 일컬어진다.
[현황]
현재 함안의 마을 제당에 대한 조사는 2개 읍, 7개 면, 35개 리의 동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제일(祭日). 당명(堂名), 당형태(堂形態) 등이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함안 지역의 제일(祭日)은 주로 음력 정월 보름이나 시월 초하루에 마을 제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함안의 동부 지역인 칠원읍, 칠북면, 칠서면에서는 주로 음력 10월 초하루나 10월 보름에, 서부 지역인 가야읍, 군북면, 산인면 등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를 지냈다.
함안의 마을 제당의 경우 주로 마을 입구나 마을 중앙, 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제당을 대체적으로 '당산'이라 불렀다. 당산에 올리는 제의는 제사를 올리는 대상인 신(神)에 따라 마을마다 부르는 명칭이 달랐으며, 그 명칭으로는 동제, 당산제, 동신제, 산신제, 동사제, 동구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다. 즉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본동 마을의 경우 '산신당', 군북면 덕대리 신창 마을의 경우 '동사당, 별사당'이라 부르고 있다. 특히 신창 마을의 경우,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솟대와 연관되어 '돛대 신왕'이 전해 오고 있음이 특이하다.
함안 지역의 제당 형태는 신목과 신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신목(神木)인 당산나무만 있거나 당산나무와 당집, 당산나무와 제당으로 구성되는 등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당산에 깃들어 있는 신령은 마을 수호신으로 당산 할배, 당산 할매, 산신, 서낭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안도 마을의 경우,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북쪽 산정 북향에 위치한 천지당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며, 신은 천신(天神)이다.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양촌 마을의 경우, 음력 정월 보름에 신목에서 동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제사를 올리는 신은 산신[호랑이]이다. 함안군 법수면 대송리 대평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입구와 마을 들 동쪽에서 대송리 대평 당산제를 지내는데, 당의 형태는 신목인 느티나무로 당산 할배와 당산 할매라 부르고 있다.
함안 지역의 동제는 농경 문화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제는 대부분 농사의 시작되는 시점인 정월 보름이나 수확한 곡식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음력 10월 초하루 또는 보름 자정에 지냈으며,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지내는 마을도 있었다. 동제의 제관은 마을 사람 중에 선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집안에 상(喪)이나 우환(憂患)이 있으면 제관으로 선정될 수 없다. 선정된 제관은 부정한 행동을 삼가하여야 하며, 동제를 지내기 전 일주일 간은 금기를 지켜야 했다. 제물로는 일반 기제사 음식과 유사하나, 소를 통째로 올리거나 돼지머리를 올리는 등 마을마다 조금씩 달랐다. 제의는 대부분 유교식으로 지냈으며, 제당에서 제관들의 제의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과 음복하는 것으로 동제가 끝이 났다.
함안 지역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한 공동체의 파괴를 경험해 왔다. 이어서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시기에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미신 타파의 움직임 속에서 대부분의 마을에서 그동안 명맥이라도 유지하고 있던 동제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현재 함안의 일부 지역은 아직도 동제의 전통이 전승되고 있다. 농촌 사회의 중요한 정신적 토대로서의 동제의 의미는 상실되었지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마을 사람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