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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096
한자 上里
영어공식명칭 Sang-ri
이칭/별칭 상동,상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수원군 삼봉면 상동에서 수원군 봉담면 상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8월 14일 - 수원군 봉담면 상리에서 화성군 봉담면 상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8년 4월 1일 - 화성군 봉담면 상리에서 화성군 봉담읍 상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01년 3월 21일 - 화성군 봉담읍 상리에서 화성시 봉담읍 상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4.64㎢[2021년 1월 기준]
가구수 3,926가구[2017년 12월 기준]
인구[남/여] 9,586명[남 4,831명|여 4,755명]

[정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상리(上里)봉담읍의 북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매송면 천천리, 동쪽으로 수영리·동화리, 남쪽으로 분천리·왕림리, 서쪽으로 상기리·내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웃골, 긴등, 봉지뿌리, 삿갓골, 신수리(新守里), 삼천병마(三千兵馬)골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상리『화성시사』(2005)에 따르면 봉담읍에서 지형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화성지』에 삼봉면 상동(上洞)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예전부터 사용된 이름으로 보인다.

자연마을 중 긴등은 마을이 기다란 등성이 언덕 위에 있다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하며, 장등(長登)으로도 불린다. 봉지뿌리는 봉지(鳳址), 봉양촌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의 생김새가 봉황의 꽁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삿갓골은 입동(笠洞)이라고도 하며, 마을의 생김새가 삿갓을 얹어놓은 것 같다는 뜻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수리는 새로 마을이 생겼다는 의미로 신술리(新述里)로 불리다가 소리 나는 데로 신수리가 되었다고 한다. 삼천병마골임진왜란 때 왜군의 퇴각로를 예측한 권율장군이 3,000명의 의병과 병마를 매복시켜서 승리한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성지』에도 기록된 유적지로 상리 저수지 남쪽의 골짜기이다.

[형성 및 변천]

상리는 조선 후기 수원군 삼봉면(三峰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삼봉면과 갈담면이 통합하면서 수원군 봉담면 상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화성군이 신설되면서 화성군 봉담면 상리가 되었다. 1998년에 봉담면봉담읍으로 승격하고,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하면서 화성시 봉담읍 상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상리의 서남부는 삼봉산(三峰山)[270.5m]과 호법산 등 산지가 이어져 있으며, 북동쪽은 평지가 발달한다. 상리의 북동쪽 경계를 따라 동화천(桐化川) 본류가 지나가고, 남쪽 산지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온 소하천들이 합류한다. 장안대학교 인근에는 상리저수지가 있으며 봉담읍 행정복지센터 옆에는 봉담호수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현황]

상리의 전체면적은 4.64㎢이다. 2017년 12월 기준 인구는 3,926가구에 9,586명으로 남자가 4,831명, 여자가 4,755명이다. 북동부지역이 2007년 화성봉담2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어 개발되면서 인구가 계속 늘고 있다. 화성봉담2 공공주택지구는 약 1.44㎢에 11,437세대의 공동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생태체육공원, 삼봉근린공원, 어울림공원, 봉담호수공원 등의 근린공원과 근린생활시설, 상업시설 등이 입지한다.

상리에 설치된 고속도로나 나들목은 없으나, 동쪽의 수영리동화리에 걸쳐있는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봉담~동탄 고속도로]의 봉담나들목이 직선거리 약 1㎞에 있으며, 남쪽의 정남면 보통리에 설치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봉담~송산 고속도로]의 남봉담나들목이 인접해 있다. 상리의 중앙으로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가지만, 정차역은 없다.

주요 시설로 봉담읍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해 화성시립봉담도서관, 화성국민체육센터 등이 있으며, 국세청중부지방 화성세무서 청사도 2024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교육 시설로는 봉담초등학교, 봉담중학교, 장안대학교, 협성대학교 등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이곤선생 효자문[화성시 향토유적]이 있다. 이곤선생 효자문은 조선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병조 정랑과 의령·보령·웅진·음죽 등의 현감을 지낸 이곤 선생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본래 목조였던 효자문이 퇴락하자 1982년 벽돌을 쌓고 맞배지붕에 한식 기와를 얹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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