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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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同福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광철 |
최초 설립지 | 동복 청년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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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청년 운동 단체 |
[정의]
1920년대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면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청년 단체.
[변천]
3·1 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통치 속에서 화순군에는 청년회 혹은 청년 수양회라는 이름으로 몇몇 단체가 결성되었다. 1920년 5월에 결성된 화순 청년회, 같은 해 7월에 창립된 능주 청년회가 그것이다. 동복 청년회의 결성시기에 대한 자료는 없으나 이들 청년회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복 청년회의 설립 당시의 공식 명칭은 동복 청년 공제회였다
동복 청년회의 설립 주체는 동복면 일원의 유력 계층이었다.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동복면의 지주·유지·명망가 혹은 그들의 자제들이 맡았다. 오계식·오병남·오형남 등이 회장직을 거쳤고, 동복 청년회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을 청년들도 오건기·하송·오진·하이송[하송의 동생] 등이었다. 운영을 맡은 청년들 대부분은 동복면을 비롯한 인근 4개 면에서 유일한 신식 학교이자 공립 학교였던 동복 공립 보통학교 출신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동복 청년회의 활동 기록은 1925년 초 이후 보이지 않는다. 1925년 전후로 화순 지역에서는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청년회 활동이 전환기를 맞는데 평소 유력 계층의 친목 단체 성격이 강했던 동복 청년회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체되거나 유명무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동복면에서는 동복 청년회 이후에 이렇다 할 다른 청년 단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화순군 청년 운동의 또 다른 거점인 능주면에서 능주 청년회의 해산 후에도 다양한 청년 또는 사회 단체들이 등장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복 청년회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1922년부터 등장한다. 1922년에 청년회는 강습소와 노동 야학을 운영했다. 대체로 지역 내 빈농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듯하며, 재원은 부유한 회원들의 출연금에 의존했던 것 같다. 같은 시기에 능주 청년회가 야학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연회를 개최한 일이 많았는데 동복 청년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야학 운영에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 교사도 참여하고 있는 점도 이채로운 점이다.
동복 청년회의 활동 중에는 자체 친목 행사·체육 행사·유흥 행사의 비중이 컸다. 동복 청년회는 1922년 1월에는 지역 출신이자 대지주의 자제들인 유학생들에 대한 환영회를 개최했고, 9월에는 지역의 명승인 적벽에서 뱃놀이 행사를 개최했다. 1925년 9월에는 동복 공립 보통학교 교정에서 남선 정구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의 일부, 특히 1922년 적벽의 뱃놀이는 호사스러움 탓에 사회적인 눈총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