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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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柱 |
이칭/별칭 | 유석(類碩),무사재(無邪齋),관수재(觀水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동교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석(類碩), 호는 무사재(無邪齋)·관수재(觀水齋).
[활동 사항]
박영주(朴永柱)[1803~1874]는 한평생 가난하였고 세 아들이 앞서 죽어 불우하였다. 그러나 학문은 고명하고 실천이 독실하였으며 의리(義理)를 매우 치밀하게 분별하였다. 일찍이 송치규(宋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송치규는 늘 “나를 일깨워 주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특히 『주역(周易)』에 해박하고 정밀하여 많은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정의림(鄭義林)·이지호(李贄鎬)·최인우(崔仁宇)·공병주(孔炳柱)·조병호(趙秉浩)·구교완(具敎完)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사후에 유림들이 증직을 청하는 소장(疏章)을 올렸고, 문인 정의림은 “선생의 도가 세상에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술회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무사재집(無邪齋集)』 4권 2책을 남겼는데, 1968년에 현손 박상원(朴常源)이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