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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학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973
한자 文人學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덕진

[정의]

조선 시대 화순 지역에서 살았던 인물 가운데 문장, 학문, 덕행에 이름났거나 생원 진사를 지낸 문인·학자.

[개설]

화순 지역은 조선 초기부터 유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성리학적 분위기 속에서 사림파 인사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기묘 사화 이후 뛰어난 유학자들이 유배를 오면서 학문을 전수하여 문장, 학문, 덕행이 뛰어난 문인과 학자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내용]

문행(文行)은 문장이, 학행(學行)은 학문이, 덕행(德行)은 인품이 뛰어난 것을 말하고, 생진(生進)은 생원이나 진사를 지낸 이를 뜻한다.

그러한 사람으로 능주 출신의 정여해(鄭汝諧)는 1508년(중종 3)에 춘양면 대신리에 해망단(海望壇)을 세워 놓고 무오사화[1498]와 갑자사화[1504] 때 죽은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김일손(金馹孫) 등을 배향하였는데, 이는 해망 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기묘사화조광조(趙光祖)가 능주로, 최산두(崔山斗)는 동복으로 유배를 왔고, 이때 양팽손(梁彭孫)도 낙향하였다. 이들은 유교 경전을 강론하고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최산두에게서 김인후가 수학하였다. 죽수 서원(竹樹書院)조광조양팽손을 배향한 서원이고, 도원 서원(道源書院)최산두를 기리는 서원이다. 이런 영향으로 하대붕(河大鵬), 정암수(丁巖壽) 등은 나주 목사 김성일적벽을 여행하였고, 기축 옥사 때에는 상소를 올렸다.

화순 지역의 문인·학자는 경전을 연구하고 강론함은 물론 충효를 실천하였다. 그들 가운데 정유재란[1597], 병자호란[1636] 때에 의병 활동을 한 사람이 많았는데, 최윤범(崔尹範)의 손자 최경회가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이다. 그리고 조민중(曺敏中), 조수정(曺守正), 정호민(丁好敏), 양위남(梁渭南) 등이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성리학이나 실학을 연구한 학자도 많은데, 18세기에 활동했던 양우전(梁禹甸), 나경적(羅景績), 박헌가(朴獻可), 그리고 19세기 말기나 20세기 초기에 활동했던 정의림(鄭義林), 김문옥(金文鈺), 양재경(梁在慶), 양회락(梁會洛), 양진영(梁進永) 등이 있다. 또한 한말 우국 지사였던 양회갑(梁會甲)도 화순 지역 출신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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