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77 |
---|---|
한자 | 安澤煥 |
이칭/별칭 | 여은(汝恩),삼희당(三希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동교 |
출생 시기/일시 | 1844년 3월 17일 - 안택환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917년 8월 16일 - 안택환 사망 |
출생지 | 안택환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매정리 |
거주|이주지 | 안택환 거주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매정리 |
묘소|단소 | 안택환 묘소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상초방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죽산(竹山)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여은(汝恩), 호는 삼희당(三希堂).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안순(安栒)이고,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진훈(白鎭勳)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현수(朴賢秀)의 딸이다.
[활동 사항]
안택환(安澤煥)[1844~1917] 은 자질이 순박하고 성품이 인후하였다. 어려서 백부(伯父) 안숙(安橚)에게 배웠고, 1888년(고종 25)에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8년 4월에 송병선이 월출산과 천관산을 유람할 때 여러 날을 배종하였으며 향음 주례(鄕飮酒禮)에도 참여하였다. 1902년 7월에 최익현(崔益鉉)이 하동 쌍계사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시국의 의리를 강론하였다. 1908년에 송병순(宋秉珣)을 찾아가 몇 개월을 머물며 강론하였고, 만동묘(萬東廟)의 제향에 관한 일을 논의하였다.
[학문과 저술]
「학문설(學問說)」, 「사정변(邪正辨)」, 「독례설(讀禮說)」 등의 글을 남겼다. 저서로 『삼희당 유고(三希堂遺稿)』를 남겼으나, 아직 간행되지 못하고 초고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상초방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