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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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會甲 |
이칭/별칭 | 회을(會乙),원숙(元淑),정재(正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양회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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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양회갑 정의림, 정시림에게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양회갑 기우만의 유고 편사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양회갑 기우만의 연보, 행장 편찬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양회갑 고강사 건립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 양회갑 사망 |
출생지 | 양회갑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 |
수학|강학지 | 죽림재(竹林齋)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 |
사당|배향지 | 고강사(高岡祠)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제주(濟州) |
[정의]
근대 화순에서 활동했던 학자.
[가계]
본관은 제주(濟州). 초명은 회을(會乙),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正齋).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호묵(梁虎黙)이며, 아버지는 현재(弦齋) 양재덕(梁在德)이다.
[활동 사항]
양회갑(梁會甲)[1884~1961]은 재주와 지혜가 총명하고 영특하여 문리를 일찍부터 성취하였다. 6세부터 할아버지인 양호묵(梁虎黙)에게서 글을 배웠고,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월파(月坡) 정시림(鄭時林)의 문하에 출입하며 경전의 뜻을 연구하였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 집지하여 근사록(近思錄), 태극 도설(太極圖說), 서명(西銘) 등을 질문하여 학문을 하는 진수를 얻어 들었고, 천인 성명의 근원과 사단 칠정의 여러 가지 설을 탐색하여 충분하게 터득하였다.
고비산(高飛山) 아래에 강당을 짓고 강학을 하니, 배우는 자들이 모여들었는데 가르치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성리설이 간재(艮齋) 전우(田愚) 등에 의해 비판을 당하자 「변외필후변(辨猥筆後辨)」을 지어서 스승의 학설을 옹호하였고, 기우만이 죽은 후에는 그의 문집을 편집하였으며, 뒤에 연보와 행장을 찬하여 『송사 선생 문집 부록』을 만들기도 하였다.
고강사(高岡祠)를 건립하여 기정진(奇正鎭)과 기우만을 향사하였다.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에는 죽림재(竹林齋)가 있는데, 이곳이 고강사(高岡祠)로, 양회갑이 강학하던 곳이라고 한다.
[학문과 저술]
저술에는 「변외필후변(辨猥筆後辨)」, 「성학원류(聖學源流)」, 「풍천록(風泉錄)」 등이 있다. 유집으로 『정제집(正齋集)』 16권 7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고강사(高岡祠)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