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17 |
---|---|
한자 | 洪天紀 |
이칭/별칭 | 경원(慶元),가헌(可軒),둔재(遯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648년 - 홍천기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718년 - 홍천기 사망 |
묘소|단소 | 홍천기 묘소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풍산(豊山)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개설]
효종 때의 사람으로 예송 논쟁을 할 때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를 따라 상소를 하였다가 반대파에게 미움을 당하였다.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원(慶元), 호는 가헌(可軒)·둔재(遯齋). 일송(一松) 홍치(洪治)의 후손이며, 홍계호(洪繼浩)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홍호고(洪好古)이고, 어머니는 제주 양씨 양철남(梁喆南)의 딸이다. 청송 심씨 심일하(沈一河)의 딸, 파평 윤씨 윤수영(尹壽榮)의 딸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홍천기(洪天紀)[1648~1718]는 기품이 걸출하고 몸가짐이 굳건하였으며, 문장을 일찍 이루었다. 약관의 나이에 문정공 허목(許穆)에게 수학하였는데 크게 칭찬을 받았다.
효종 때 예제(禮制)의 일로 고산 윤선도의 논의를 좇아 몸을 빼어 홀로 상소하다가 권귀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집에서 피신하였다. 주희(朱熹) 둔옹(遯翁)의 의리를 추모하여 둔재(遯齋)라고 자호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여 과거 공부를 업으로 삼지 않았다.
[묘소]
묘는 화순군 서일면 대곡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