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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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鳴海 |
이칭/별칭 | 거원(巨源),삼호(三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동한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거원(巨源), 호는 삼호(三湖).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최경운(崔慶雲)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선교랑 최광헌(崔光憲)이고, 어머니는 나주 나씨 나덕준(羅德峻)의 딸이다.
[활동 사항]
최명해(崔鳴海)[1607~1650]는 어려서부터 뜻하는 바가 컸으며, 충효심이 남달리 뛰어났다. 그리고 언제나 독서하며 충효의 사적을 보면 반드시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였다.
병자호란 때 도성이 적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거의를 도모하여 읍인(邑人) 조수성(曺守誠)·조엽(曺熀)·임시태(林時泰)와 함께 의병을 창기(倡起)하고 군량미를 모았다. 이흥발(李興浡)·이기발(李起浡)·양만용(梁曼容)·최온(崔蘊) 등과는 여산에서 회병(會兵)하였다. 청주에 이르러서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력을 해산하고 통고하며 돌아왔다. 홍명하(洪命夏)가 거듭 천거하였으나 굳게 거절하고 두문 불출하고 은거하다가 죽었다. 송치규(宋穉圭)가 행장을 찬술하였다.
원래는 화순 삼천리에 살았는데, 1637년경 화순읍 아래 지실 마을에 입향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치규(宋穉圭)가 행장을 찬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