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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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益之 |
이칭/별칭 | 겸숙(謙叔),야옹(野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608년 - 안익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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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87년 - 안익지 사망 |
거주|이주지 | 매화정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매정리 |
묘소|단소 | 매화정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매정리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죽산(竹山) |
대표 관직|경력 | 선무랑(宣務郞) |
[정의]
조선 후기 화순에 은거한 문인.
[가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겸숙(謙叔), 호는 야옹(野翁). 안축(安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중돈(安重敦)이고, 아버지는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정승복(鄭承復)의 딸이고 부인은 김의명(金義鳴)의 딸이다.
[활동 사항]
안익지(安益之)[1608~1687]는 효우(孝友)가 뛰어나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아버지의 밑에서 수학을 할 때는 매우 독실하게 하였으며, 아버지 안방준을 따라 능주의 매정리로 입거하여 은봉 정사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
이후 자연 속의 궁벽진 곳에서 살며 경학에 침잠하여 연구하고 성리학을 탐구하여 주자의 깊은 뜻을 따랐다. 사방에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모여들어 빈 것으로 왔다가 가득 채워서 돌아갔다.
언행이 줄을 그은 것과 같고 연원이 참다우니 유풍의 여운이 백세의 준칙이 되었다. 효우와 학행으로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이 천거하여 선무랑(宣務郞)에 제수되었다.
[묘소]
묘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매정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