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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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文謨 |
이칭/별칭 | 문식(文植),송간(松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844년 - 구문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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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51년 - 구문모 서당에 취학 |
활동 시기/일시 | 1866년 - 구문모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창의를 하려고 함 |
몰년 시기/일시 | 1918년 10월 18일 - 구문모 사망 |
출생지 | 구문모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곡리 통안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능성(綾城)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문식(文植), 호는 송간(松澗). 오봉(鰲峰) 구두남(具斗南)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구본의(具本誼)이다. 어머니는 흥덕 장씨(興德張氏) 장창(張昶)의 딸이며 부인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영습(文永習)의 딸이다. 생부는 구본극(具本極)이다.
[활동 사항]
구문모(具文謨)[1844~1918]는 8세에 서당에 취학하였고, 문리가 조금 통하게 되자 진사 양만희(梁晩羲)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정의림(鄭義林), 기우만(奇宇萬)과도 함께 강학하였다. 이후 면암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나아가 성명(性命)의 근원을 탐구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한 고을 사람인 산남(山南) 김준기(金俊基)가 창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참하려고 하였으나 난이 평정되어 그쳤다. 1871년에는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가 과거장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과거 공부를 단념하고 의리 공부에 전념하였다. 만년에는 송간대(松澗臺)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학문과 저술]
『송간 유고(松澗遺稿)』가 있다.
[묘소]
묘는 화순군 춘양면 용곡리 통안 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