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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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大器 |
이칭/별칭 | 중용(仲容),경재(警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동교 |
출생 시기/일시 | 1528년 - 김대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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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1년 - 김대기 진사시 합격 |
출생지 | 김대기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신산(薪山) |
거주|이주지 | 김대기 거주지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
정자 | 사구정(沙邱亭)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용(仲容), 호는 경재(警齋). 문민공(文敏公) 김충한(金沖漢)의 후예이며,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김영전(金永傳)이고, 아버지는 전연사 직장(典涓司直長) 김종정(金從貞)이다.
[활동 사항]
김대기(金大器)[1528~?]는 1561년(명종 16)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 삼계(三溪) 최경회(崔慶會)와 도의(道義)로 교유하였다. 조헌(趙憲)이 일찍이 정여립(鄭汝立)에 대해 왕망(王莽)의 공검(恭儉)과 왕안석(王安石)의 문장(文章)을 지닌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교제를 신중히 할 것을 훈계하였는데, 그 후로 정여립과 교분을 끊고 사구정(沙邱亭)을 지어 학문에 몰두하였다. 정철이 여러 번 천거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