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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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韡 |
이칭/별칭 | 광보(光甫),회재(悔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이위 의병 거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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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60년 - 이위 생원시 급제 |
사당|배향지 | 충현사(忠賢祠)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 |
성격 | 문인·학자|의병 |
성별 | 남 |
본관 | 공주(公州) |
대표 관직|경력 | 가선대부 동지중추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광보(光甫), 호는 회재(悔齋).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판에 증직된 이영숙(李靈肅)이다.
[활동 사항]
이위(李韡)[?~?]는 화순 출신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문을 성취하고, 「분의편(奮義篇)」과 「계자서(戒子書)」를 저술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동지들과 안방준을 도와 서기가 되고, 말을 달려 여산까지 이르렀다가 화의가 성립되었음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1660년(현종 1)에 생원시에 올랐고, 효행으로 여러 번 도천(道薦)에 올랐으며, 뒤에 수직(壽職)으로 가선 대부 동지중추에 제수되었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충효전(忠孝傳)」을 지어 극찬하였다. 사림이 칠송리에 충현사(忠賢祠)를 지어 춘추로 향사한다.
[학문과 저술]
「분의편(奮義篇)」과 「계자서(戒子書)」를 저술하였다.
[상훈과 추모]
사림이 칠송리에 충현사(忠賢祠)를 지어 춘추로 향사한다. 최익현(崔益鉉)이 묘비명을 찬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