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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102
한자 梁悌容
이칭/별칭 여공(汝恭),칠송(七松)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만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27년연표보기 - 양제용 의병 활동[1627]
활동 시기/일시 1636년연표보기 - 양제용 의병 활동[1636]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양제용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공(汝恭), 호는 칠송(七松).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양산욱(梁山旭)이다.

[활동 사항]

양제용(梁悌容)[?~?]은 1627년(인조 5)에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거의(擧義)하여 근왕(勤王)한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현감(淳昌縣監) 최온(崔蘊)의 창의 격문(倡義檄文)이 12월 18일에 남평(南平)으로부터 화순에 도착하자, 이때 도유사(都有司) 양제용과 위홍원(魏弘源)의 이름으로 격문을 돌렸다. 이 격문에 화순의 김시엽(金時燁)이 거의하기도 했다. 양제용은 능주 의병 도유사(綾州義兵都有司)로 군량미와 의병을 모았는데, 소문을 듣고 응하는 자가 매우 많았다. 청주(淸州)에 이르렀으나 강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파병(罷兵)하고 돌아왔는데, 걱정과 분노로 병을 얻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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