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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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和順鄕校釋奠大祭 |
이칭/별칭 | 석전제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동2길 14[교리 29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희재 |
시작 시기/일시 | 1433년 - 화순 향교 석전대제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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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 시기/일시 | 1594년 - 화순 향교 석전대제 1차 중단 |
중단 시기/일시 | 1597년 - 화순 향교 석전대제 2차 중단 |
재개 시기/일시 | 1611년 - 화순 향교 석전대제 재개 |
재개 시기/일시 | 1957년 - 화순 향교 석전계안 작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6년 9월 30일 - 화순 향교 대성전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6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11월 1일 - 석전대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 |
의례 장소 | 화순 향교 대성전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동2길 14[교리 293] |
성격 | 유교 의례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2월 상정일|8월 상정일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무형문화재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에 있는 화순 향교에서 매년 춘추로 거행하는 유교 의례.
[개설]
공자의 학덕과 유풍을 기리고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화순 향교에서는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화순 향교에서 지내는 석전대제는 삼국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유교 의식으로, 매년 봄[음력 2월 초정일]과 가을[음력 8월 초정일] 두 번에 걸쳐 봉행하고 있다. 석전대제는 1986년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연원 및 변천]
향교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으로 각 지방마다 하나씩 있었다. 화순군의 경우 1914년 현재의 화순군이 되면서 화순 향교, 능주 향교, 동복 향교 등 3개소가 포함되었는데, 이는 화순 지역에서 유교 문화가 융성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화순 향교는 1434년(세종 15)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1434년에 만화루(萬化樓)가 세워지고 1435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화순현으로 독립된 시기가 1418년(태종 18)이었으므로 아마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미 향교가 창설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화순현이 능주와 병합되었다가 1611년(광해군 3)에 다시 독립되자 1611년에 현감 이인부(李仁傅)가 재건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았고, 이후 현감이 1647년(인조 25)에 중수하였다. 화순 향교에 양사재(養士齋)가 건립된 것은 1663년이었고, 이에 대한 중수 기사는 1822년 양사재 유안(儒案)에 남아 있다. 현재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인 돈인재(敦仁齋)와 서재인 숭의재(崇義齋)가 있고, 만화루가 자리 잡고 있다.
화순 향교는 경사지에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전통적인 종축(縱軸) 배치 형태로 만화루-명륜당[좌·우측의 동재와 서재]-대성전의 축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석전대제는 대성전에서 이루어진다. 문묘인 대성전은 측면 3칸의 맞배집 양식으로 풍판(風板)을 달았으며 전면 1칸은 퇴간(退間)으로 개방하였다. 동·서재는 각각 현재 돈인재와 숭의재로 현판이 되어 있으며, 교생의 기숙사로 정면 3칸이다.
[절차]
화순 향교 석전대제에는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 셋째 잔을 올리는 종헌관이 있다. 나머지는 분헌관을 두어 제를 올린다. 석전대제는 공자·안자·증자·맹자·자사 등 대성전 중앙에 있는 5명 신위에 초헌관·아헌관·종헌관이 각각 분향과 헌주를 한다. 초헌례·아헌례·종헌례에 이어 두 명의 분헌관이 고운 최치원 등 동방 18현을 비롯한 좌우 22명의 신위에 헌주하는 분헌례 순으로 진행된다.
홀기(笏記)[제례 순서]는 봉행 준비 → 창홀(唱笏) → 전폐례(奠幣禮)[초헌관이 오성위(五聖位)에 향을 피우고 폐백을 올리는 예] → 초헌례(初獻禮)[오성위에 첫잔을 올리고 대축(大祝)이 축문을 읽는 예] → 아헌례(亞獻禮)[아헌관이 오성위에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예] → 종헌례(終獻禮)[종헌관이 오성위에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예] → 분헌례(分獻禮)[분헌관이 종향위에 잔을 올리는 예] → 음복례(飮福禮)[초헌관이 음복을 하는 예] → 철변두(徹籩豆)[대축(大祝)이 변과 두를 거두는 의식] → 망료례(望燎禮)[폐백과 축문을 불사르고 땅에 묻는 예]로 진행된다.
[축문]
축문은 “몇 년 몇 월 몇 시에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만세의 스승이신 문선왕의 상정일(上丁日)을 당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희생과 폐백과 예제(醴齊)와 곡식과 여러 가지를 잘 차려 놓았으니 자리하시어 흠향하시옵소서.[維[年號] 歲次 干支 某月 干支 (官職) 姓名 諱 敢所告于 大成至聖文宣王 伏以維王 道冠百王 萬歲宗師 玆値上丁 精禋是宜 謹以 牲幣醴齊 秶盛庶品 式陳明薦以 尙嚮]”로 되어 있었으나 1957년 석전계안에는 다음과 같이 축문을 고쳤다.
“단군기원 년 몇 년 몇 월 몇 시에 유학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만세의 스승이신 문선왕의 상정일을 당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희생과 폐백과 예제(醴齊)와 곡식과 여러 가지를 잘 차려 놓았으니 연국 복성공 안자, 성국 종성공 증자, 기국 술성공 자사, 추국 아성공 맹자께서도 자리하시어 흠향하시옵소서.[釋奠大祭 祝文/ 檀君紀元 年 某月 某朔 某日 支干/ 幼學 某/ 敢昭告于/ 先聖大成至聖文宣王 伏以 道冠百王 萬世之節 玆値上丁精禮 是宜謹以牲幣 醴齊粢盛庶品 式陳明薦 以先師 兗國復聖公顔子 郕國宗聖公曾子 沂國述聖公子思 鄒國亞聖公孟子 / 配 尙 饗]”
화순 향교의 석전계안에 따르면 석전대제를 위해 지역민들이 자금을 거출하고 계를 만들었다. 전교(典敎) 1인이 계장(契長), 총무(總務) 2인이 부계장(副契長), 장의(掌儀) 약간 명이 유사(有司)를 맡아 석전대제를 진행해 왔다.
[석전의 대상]
화순 향교 대성전 위차도는 다음과 같다.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서위(西位) 동위(東位)
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 증자(曾子)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 안자(顔子)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 맹자(孟子) 기국술성공(沂國述聖公) 자사(子思)
서벽(西壁) 동벽(東壁)
정 호(程 顥) 주돈이(周敦頤)
소 옹(邵 雍) 정 이(程 頤)
주 희(朱 熹) 장 재(張 載)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 홍유후(弘儒侯) 설 총(薛 聰)
휘국공(徽國公) 주 희(朱 熹) 예국공(豫國公) 정 호(程 顥)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 문성공(文成公) 안 유(安 裕)
문헌공(文獻公) 정여창(鄭汝昌) 문경공(文敬公) 김굉필(金宏弼)
문원공(文元公) 이언적(李彦適) 문정공(文正公) 조광조(趙光祖)
문정공(文正公) 김인후(金麟厚) 문순공(文純公) 이황(李滉)
문간공(文簡公) 성 혼(成 渾) 문성공(文成公) 이 이(李 珥)
문열공(文烈公) 조 헌(趙 憲)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 문경공(文敬公) 김 집(金 集)
문순공(文純公) 박세채(朴世寀) 문정공(文正公) 송준길(宋浚吉)
[현황]
화순 향교는 2013년 9월 8일 추기 석전대제를 봉행하였다. 이때 초헌관은 김연태 화순군 부군수가 맡았다.